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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식상한. 그래서 더 공감할 수 밖에 없는... 태극기 휘날리며
forever501 2004-02-12 오전 3:11:40 1171   [12]

  아주 오래 기다렸다. 한국 영화는 <쉬리>이전과 <쉬리>이후로 나뉜다는 아무개의 말은 차치하고라도,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만들어낸 장본인, 강제규 감독의 새 영화라는 사실만으로 가슴 설레는 기다림이었다. 게다가 둘째 가라면 서러울 대한민국 대표 '얼짱' 장동건, 원빈이 형제로 나온다니!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이 묻어놓았을 저 반세기 전의 '한국전쟁'을 이야기한다니... 휘향찬란한 예고편을 보고나서 개봉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을 때는 첫 날밤을 앞둔 새색시처럼 설레는 맘과 두려운 맘이 교차했다. "이번에도 꼭 멋진 작품이 될꺼야.. 될꺼야.."

   그리고 드디어 <태극기 휘날리며>(이하 <태극기>)는 개봉했다. (아주 운 좋게도 모 이벤트에 당첨되어 꽁짜 영화 예매권 두 장이 이메일을 통해 날라왔다. 태어나서 이벤트 당첨은 첨이었는데, 마침 <태극기>개봉에 맞춰 나오다니.. 이건 분명 신이 내린 선물인게야!!)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를 워낙 많이 수집하고 극장에 간지라, 영화의 때깔이 어느 정도이겠거니 예측을 하고, 좌석에 앉았다.

    영화는 비교적 점잖게 출발했다. 액자구조(영화 속의 영화)를 알리는 출발은, '결말에선 대략 이런 장면이 나오겠군..'하는 기대감(혹은 예측 가능함으로 인한 기대감 상실)을 줬다.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1950년 6월. "오빠는 풍각쟁이야"가 흘러나오는 54년전 서울의 모습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그 속에서 진태와 진석 형제의 모습도 차분히 녹아있었다. 곧 포성이 울리고, 아수라장이 될 서울의 모습과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이었을게다. 다른 전쟁 영화나 재난 영화 등의 도입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기에 식상한 느낌도 들었지만, 두 형제의 너무나도 다정한 모습에, 그리고 영신(이은주)의 풋풋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을 띄며 극을 지켜보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오늘같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너무나도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복선의 역할을 하는 그 대사에도 동감할 수 있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 6월 25일 일요일. 전쟁이 터지고, 영화는 '한국전쟁'이 그랬듯, 하루 아침에, 아니 몇 분 만에 비극으로 바뀌어간다. 전장에 끌려가는 두 형제. 그리고 '예고'된 가족과의 생이별. 

   이 장면은 이 영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바로 이때부터 관객은, 감독이 앞으로 어떤 감정의 흐름으로 관객을 몰고갈 지 뻔히 알면서도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입장에 놓인다. 누구나 교과서와 국방부의 VTR을 통해 한국 전쟁의 그 드라마틱함을 잘 알고 있기에, 진격과 퇴각을 반복했던, 세계에서 가장 극적인 전쟁으로 손꼽히는 '한국전쟁'의 그 모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관객은 급격하지만, 이미 "예고"된 감정의 흐름에 다같이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말 못하는 어머니, 그리고 약혼녀.. 약혼녀의 죽음.. 전쟁터에서 잃은 전우.. 그로 인한 갈등과 방황...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설정에 식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면서도, 그래도 러닝타임 내내 몇 번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한국전쟁'이라는 묵직한 실화가 주는 힘이다.

   <태극기>의 전투신은 여태껏 한국 영화가 보여줬던 그 어떤 신보다도 화려하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꽤 커다란 논란의 여지가 될 듯 하다. 화면 가득 쏟아지는 포탄과 비명에 정신이 멍해진다. 화면은 점점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하고, 누가 누구인지 당최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전쟁의 참혹함이란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영화에서 총 4번에 이르는 전투신은 요동치는 카메라 기법이 주를 이루는데, 이런 장면들이 이어짐으로서 얻는 효과는 극과 극으로 나뉘는 듯 하다. 포격으로 인한 현장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관객을 압도하기 시작하는데 이런 효과는 "내가 저 전쟁터에 나가 있다면.."이라는 상상을 주고, 이런 상상이 관객에게 전도되기 시작하면, 영화 속에 자신의 감정을 몰입하기 시작한다.

  반면, 러닝타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전투신이 진태, 진석의 클로즈업. 카메라 쉐이크의 반복으로 이뤄지다보니 꽤 디테일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관객에게는 리얼리티를 전달하지 못한감도 없잖아있다. '또 싸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말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두 형제간의 갈등은 보는 이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도 있겠다. 하나같이 여리고 여려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진석의 말과 행동. 그리고 전쟁이 극에 달하면 달할 수록 미치광이가 되어가는 진태의 모습. 두 형제의 감정 곡선은 살짝 과잉된 것 처럼 보이기도 하다. 또 이를두고 자타부타말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진태가 후에 월북해서 인민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되고, 결국 진석과 전쟁터에서 비극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는 것은 약간의 작위적인 설정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영화를 다른 전쟁 영화와 차별화 시키는 최대의 강점이기도 하다. 영화가 '전쟁터에서 이룰 수 없었던 진태와 영신의 러브스토리'로 흘러갔다면 정말 별볼일 없는 영화가 되었을텐데, '아우를 위해선 무엇이든지 하고 싶었던 형의 숭고한 희생정신'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를 덧입힘으로써, 영화는 힘을 얻게 된다.

   노년 진석이 진태의 유골을 보고, "왜 이제서야 왔어요.. 같이 오기로 해놓구서.."라고 울부짖는 장면에선 이렇게 식상할 수가 있나! 하면서도 끓어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만년필이라는, 이 역시 너무나도 진부하기 이를데 없는 매개체를 보면서도 눈물 범벅으로 극장을 빠져나올 수 밖에 없다.

  <태극기>는 너무나도 뻔한 영화이다. 그러나 그 '뻔함'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과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흘리는 눈물이 너무나 당연하듯, <태극기>가 말하는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해서, 그래서 눈물로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장동건의 광기 어린 연기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명연기였다. <해안선>이후 몰라보게 달라진 장동건의 연기력을 유감없이 실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막판에 "이제 집에 가자"며 형을 붙잡고 울부짖는 원빈의 연기는 말 그대로 "상상, 그 이상"이었다. 세상 어느 여자라한들 그의 모습에 반하지 않을 이가 있으랴. 한없이 부러울 따름이다.

  이은주, 공형진의 연기는 튀지 않을 정도로 딱 적당했다. 다만, 공형진의 캐릭터가 아주 조금만 더 생생했으면 극이 좀더 생동감있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영화의 흐름을 크게 좌지우지할 캐릭터는 어차피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 편하게 가족과 식사를 하고, TV를 보고, 인터넷을 할 수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항상 보는 얼굴이라 존재감마저 잃어버린 나의 하나뿐인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 강제규 감독이하 스탭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


(총 0명 참여)
저도 그토록 싫어하던 진부함 속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이 영화 팬이 될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영화에서 짜증나던 진부함이 이 영화에선 감동을 주더군요.   
2004-02-12 23:28
정말 잘 쓰셨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면서 지금이 소중하다는걸 깨달았거든요...   
2004-02-12 12:42
정말 바보같지만....제가 너무도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님의 글을 읽는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울컥해지는건 어떤 이유일까요??   
2004-02-1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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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2004, Taeguk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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