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도사린 거대한 상상
반지의 제왕 | 2001년 12월 31일 월요일 | 우진 이메일

쫄쫄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아무래도 삐딱했던 우리 오빠가 두꺼운 책 몇 권을 짊어지고 들어왔다. 그 당시 특이하고 유별난 거 좋아하던 '통신족'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암암리에 떠돌던 '반지 전쟁' 해적판. 오로지 제목과 표지의 느낌으로만 책을 골라잡던 내가 그 책을 놓칠 리 없었다. 반, 지, 전, 쟁-이 얼마나 로맨틱하며 환타스틱하고 웅장한 어감이란 말인가. 하지만 우리 오빠, 제 책은 꽁꽁 싸둔 채 손도 못 대게 눈을 부라려댔던 터라, 홀딱 읽어 치우고 싶어 애가 타던 마음과는 달리 몇 날 몇 일을 책 곁에서 뱅뱅 맴만 돌아야 했다. 드디어 오빠가 동네 친구네 집에 놀러간 틈을 타 '반지 전쟁' 1권을 슬며시 끌어안고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 어린 나는 술렁술렁 설레기까지 했다. 그리고 얼마 동안의 '도둑 독서'가 시작됐다. 콩닥콩닥 글자들을 더듬어 내리다 책장을 베고 잠이 들면, 다정한 호빗과 모험하는 꿈도 꾸었던 것 같다.

검증받은 문학을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영화는 '밑져야 본전'인 경우가 많다. 웬만해선 '영화가 원작을 망쳤네' 비아냥을 듣기 십상이고, 최고의 찬사라 봤자 고작 '원작에 충실했다, 수고했군'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뛰어난 문학작품에 대한 영화화 시도가 시들 줄 모르는 것을 보면 '상상의 구체화'에 대한 인간들의 욕망 또한 말릴 수 없는 수준인가 보다. 특히 상상을 복사해내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들의 열정은 부추겨지고, 그 덕분에 관객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는 환상적인 영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반지의 제왕]과 조우하려 극장에 들어앉은 내 기분은 기대보다는 불안감이었다. 아무리 이 영화에 대한 찬사가 귓가에 후둑 쏟아진다 해도, 아직 나는 구체적인 상보다는 추상에 더 매력을 느끼는 사람임을 부인할 수 없으므로. 어린 날의 아련하고 두근대는 꿈 속 풍경이 내 눈앞에서 얼마간 비틀리는 순간, 폭삭 실망해 버릴 것만 같았다. 게다가 스스로 길어 올리던 상상의 우물물을 누군가가 덥썩 부어주면, 그 또한 맥빠지는 일 아닌가.

영화는, 훌륭했다. 판타지 문학의 시초라는 타이틀을 쥔 위대한 원작의 맥을 잘 이었고, 스토리의 큰 줄기도 제대로 짚어냈다. 반지 원정대 결성 전까지의 이야기를 다소 설명조로 늘어놓긴 했지만,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을 위한 배려로 작용하기도 하고 워낙 화려한 영상 덕에 지루한 감은 없다. [반지의 제왕]은 집약된 상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스크린에 공들여 수놓은 결과물이다. 특히 결투 장면들에서는 활자로 닿기 힘든 영상 특유의 긴장감과 속도감, 장엄함을 이룩해 냈다. 또한 이 영화는 책을 이미 읽었던 관객들 공통의 상상 뿐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는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상상까지도 몸소 보여준다.

물론 원작을 그대로 옮겨 놓지는 못했다. 워낙 방대하게 넘치는 이야기라, 영화로 담아내기 위해 많은 부분을 축약했다. 원작자 J.R.R.톨킨의 풍부한 상상과 지식의 곁가지들까지 아우르고 싶은 관객은 다시 책을 찾게 될 것 같다. 문학의 대중화가 영화를 만들어 냈던 [해리 포터]와는 달리, [반지의 제왕]은 영화로 인해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독자를 넓힐 듯한 예감이 든다.

[반지의 제왕]은 힘있고, 묵직한 영화이다. 원작의 세세한 결보다는 스펙타클한 영상 구성에 치중한 것이 어떤 시각에서는 아쉬울 수 있지만, 현란한 화면조차도 웅장하게 가라앉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 이 영화는 원작의 매니아 뿐 아니라 '보고 듣는' 영화의 매력을 아는 관객 모두에게 공룡의 발자국처럼 신비하고 거대한 진동을 남길 것이다.

(총 5명 참여)
ejin4rang
반지의 제왕... 판타지의 제왕   
2008-10-16 16:31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8:09
pyrope7557
와.....상상초월.....입이 짜악~~~~~~~~   
2007-07-19 14:55
kangwondo77
스크린에 도사린 거대한 상상   
2007-04-27 15:40
ldk209
세상에나.. 이런 영화를 직접 보게 되다니...   
2007-01-3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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