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조용 느릿느릿 매력 철철 <명당> 조승우
2018년 9월 22일 토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내부자들>(2015)의 ‘우장훈’ 검사 이후 조승우가 오랜만에 사극 <명당>의 천재 지관 ‘박재상’으로 관객을 찾는다. 이번 <명당>은 <퍼펙트게임> 이후 박희곤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그간 박희곤 감독의 제안에 시나리오가 재미없다는 이유로 두 번 퇴짜 놓은 끝에 세 번 만에 수락한 <명당>, 그만큼 박희곤 감독표 사극이 기대됐다고 한다. 조승우는 격렬하게 감정을 표출하고 대립하는 인물 사이 균형을 잡아주는 ‘박재상’이 화려하고 튀는 인물은 아니지만, 내면에 힘을 간직한 캐릭터라 좋았다고 한다. 오는 11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공연을 앞두고 있는 그는 2년간 무대를 떠나 드라마 <비밀의 숲>과 <라이프>, 영화 <명당>를 했으니 이제 돌아갈 때가 됐다고 하며, 스스로 ‘무대 배우’라고 자처한다. 무대 배우가 어쩌다가 영화로 인터뷰하는 중이라며 씩 웃는 조승우, 아직도 카메라가 불편하고 어색하다고 말하는 데뷔 19년 차 배우. 조용조용 느릿느릿 가식 없는 그 말솜씨, 매력 철철 넘친다.

<명당>은 <관상>(2013), <궁합>(2018)에 이은 이른바 역학 3부작의 마지막 주자이다. 시리즈의 전작들을 봤는지. 차별점이 있다면.
정말 많이 받는 질문이다. 사실 전작을 안 봤고, 제작사의 콘셉트라고 본다. 아마 시리즈 전작들과 비교 분석해서 작품의 방향과 결을 결정했다면 오히려 좋지 않은 작업이 됐을 것 같다. 딱 <명당>만 놓고 봤다.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역을 맡아 오랜만에 사극으로 관객을 찾는다. 완성본을 본 소감은.
시나리오보다 생동감과 속도감 있더라. 디테일한 면을 잘 살린 것 같아서 좋았다.

‘박재상’(조승우)이 극의 중심인물임에도 액션 이나 강한 감정 표출이 없다 보니 한편으론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캐릭터인데, 개인적으로 아쉽지 않았는지.
이미 알고 들어간 건데 아쉬울 게 뭐 있나. 극 후반으로 갈수록 세도가 ‘김좌근’(백윤식)과 ‘흥선’(지성)의 대립이 격렬해진다. 거기에 나, 그러니까 ‘박재상’까지 끼면 영화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

‘박재상’ 캐릭터를 소개한다면.
내면은 강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차분하고 정적인 인물이다. 그렇기에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운 인물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준다. 자세히 곱씹어 보면 자잘 자잘 입체적인 모습이 꽤 있다. (웃음)

가령…
그만의 전사가 있다. 세도가의 눈치 보느라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진실 – 왕릉 자리가 흉지라는 것-을 소신 있게 말하고, 그 한마디로 가족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잃게 된 청렴한 인물이다. 그 후 13년간 복수의 칼날을 갈다가 우연한 기회에 ‘흥선’을 만나고 사적 복수보다 국가의 운명을 수호한다는 대의에 각성하게 되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뜻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 것에 대한 패배감, 자신의 편이라고 믿고 신념을 나눴던 우정에 대한 상실감 등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후반부 가야사가 불타는 광경을 목도할 때는 아마도 13년 전 자신의 집이 불타고 가족이 살해당했던 참상을 떠올렸을 거다. 믿었던 ‘흥선’을 향한 배신감까지 요동치는 감정을 느꼈겠지. 그리고 이후 묏자리를 골라주는 게 아닌, 즉 사람을 묻는 게 아닌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땅’을 읽을 줄 아는 자신의 능력을 쓰고자 한다. 어떻게 보면 ‘박재상’의 제2의 운명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엔딩의 무관학교를 의미하는 것 같다.
맞다. 허구이지만,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연결될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박재상’이 천재 지관이니 만큼 풍수지리에 관해 공부?를 많이 해야 했을 것 같다. (웃음)
감독님이 참고하라고 책을 한 권 주셨는데, 펼치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심하게 전문서적이라서….(웃음) 박희곤 감독님이 원래 영화 촬영 들어가기 전에 자료를 많이 주는 편이다. 이번 <명당>이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입힌 거라서 그 차이를 다룬 자료와 당시 상지관의 역할 등 관련 내용을 많이 찾아 주셨다. 조선 후기 지관들은 단순히 왕릉 후보지를 고르는 것뿐만 아니라 왕릉 조성 관련 대부분 행사를 도맡아 했더라.

평소 풍수지리나 땅에 관심 있었는지.
관심 없었고 지금도 별로 없다. 다만 나중에 가정이 생기면 집 짓고 살고 싶다는 바람은 있다. 과일나무를 심고 채소도 키우고, 동물도 좀 뛰어놀면 좋겠고. 아, 염소도 키웠으면 좋겠다. 집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오, 집사에 집돌이다운 바람이다!(웃음) <명당>은 박희곤 감독과 <퍼펙트 게임>(2011) 이후 두 번째 호흡이다. 참여하는데 감독님이 영향을 미쳤는지.
많이 작용했다. <퍼펙트 게임>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의 <인사동 스캔들>(2009)을 보면서 놀랐었거든. 이후에 나온 <도둑들>(2012), <꾼>(2017)과 비슷한 장르물인데 아주 감각적이고 속도감 높아서 도대체 어떤 감독님이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궁금하던 차에 <퍼펙트 게임> 제안을 받았었다. 함께 작업해보니 역시 장점이 많은 분이더라. 그 후 사회인 야구를 같이 하는 등 개인적으로도 친해졌다. 그렇다고 감독님만 보고 <명당>을 한 건 아니고,(웃음) <명당> 전에 두 번 정도 제안을 주셨는데 그때는 거절했었다.

거절한 이유는. 세 번 만에 오케이한 작품이 <명당>인 셈인데 어떤 점에 끌렸는지.
이전에 제안 주신 시나리오에서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이번엔 감독님이 사극을 한다는 게 의외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르로 묘한 조화가 기대됐다. 박희곤 감독님의 감각과 사극이 만나면 새로운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아 주저 없이 결정했다.

감독 혹은 제작사와의 친분으로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출연 결정했다는 배우도 꽤 있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런 분도 있는데, 내 기준은 시나리오라서 어떤 이야기인 줄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하지 못한다. 다만 <고고70>(2007)은 예외였다. 당시 뮤지컬 <헤드윅> 공연할 때인데 감독님이 찾아와서 70년대 음악 이야기라고 하는데, 마치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공연하며 음악에 빠져 있던 때라서 그랬던 것 같다. 시나리오 한 줄 안 나온 상태에서 참여 결정하고 이후 음악을 직접 선곡했고, 우리 집에 모여 밴드 연습하곤 했었다.

당신에게 ‘박재상’을 제안하며 감독님이 주문한 연기 방향이 있다면. 혹은 캐릭터에 대한 조언은.
‘김좌근’(백윤식)과 ‘흥선’(지성) 사이에 묵묵한 축이 필요하니 명확하게 중심을 잡아 달라고 하셨다. ‘박재상’이 튀지 않고 어떻게 보면 에너지가 부족해 보일 수도 있는 인물이지만, 나밖에 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꼬셨다. 시나리오 받아보니 역시 정적이지만 힘 있는 인물이었다.

박희곤 감독의 새로운 사극에 대한 기대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사극을 하는 게 재미있다. 원래 과거 이야기, 즉 역사에 관심이 많고 고대로 갈수록 드라마틱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알게 되는 것 자체가 생동감 있지 않나. 요즘 형식과 내용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은데 <명당>은 일단 소재가 신선했고 흥선대원군의 젊은 모습을 다룬다는 점도 좋았다.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멋을 부리지 않은 약간 클래식하고 전통적인 점도 좋았다. 퓨전 사극보다 의미가 있겠다 싶더라.

어떤 면에 끌렸는지 알겠다. 한편에선 다소 심심하다는 평도 있다.
음… 그건 감독님께! 개인적으로 정적인 가운데 태풍의 눈처럼 강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자극적이진 않아도 여운을 남길 요소가 충분하다고 본다.

이번 ‘박재상’을 비롯해 그간 연기했던 캐릭터가 모두 강한 소신을 지닌 인물들이다. 작품 선택에 있어 기준은.
멋있고 화려한 작품보다 정적이고 밋밋해도 의미가 있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하고 싶다. 거창한 메시지가 아니라 보는 이에게 조금의 울림이라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예전 내가 한 편의 연극을 보고 배우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게 된 것처럼 내 연기도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단지 즐거움만 주는 존재이고 싶지 않다.

당신이 포기할 수 없는 신념 혹은 욕망이 있다면.
음… 신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무엇을 하든 후회할 것 같으면 하지 말자, 만약 선택했다면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말자… 이 정도다. 또, 남에게 피해 주지 말자는 거, 주로 그렇게 살아왔다.

좀 전에 말한 당신을 배우로 이끈 연극은 뭘까. 궁금하다. (웃음)
<맨 오브 라만차>였다. 프로 배우가 아닌 고등학생들의 연극이었는데 그 공연을 보고 내 모든 걸 바쳐서라도 ‘돈키호테’가 되어 무대에 서겠다고 결심했었다. 다행히 불과 10년도 걸리지 않아 이루어졌으니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지.

드라마 영화 뮤지컬, ‘연기’를 베이스로 한 세 분야를 모두 누비고 있는데… 오는 11월부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공연 예정인데, 무대를 꾸준히 찾는 이유는.
무대를 2년 쉬며 드라마 <비밀의 숲>, <라이프>와 영화 <명당> 세 작품을 했으니 이제 무대로 돌아갈 때가 됐다. (웃음) <지킬앤하이드>의 경우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원하고 찾아주는 데다 나 역시 서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나는 원래 무대 배우로 내게 무대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공간이다. 무대 배우가 영화 한다고 나와서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거다! 하하

좀 전에 말했듯 드라마, 영화, 뮤지컬을 넘나들며 ‘연기’로 까이지 않는, 즉 연기 잘하는 배우로 손꼽힌다. 역할을 맡고 준비하는 과정은.
참, 내가 그런 말을 듣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과찬에 감사하다. 모든 답은 대본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본을 파고 또 파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파는 편이다. 참고할 자료 주면 열심히 보고 궁금한 내용은 만나서 이야기하고, 또 아이디어 있으면 내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 크랭크인 들어가면 열심히 촬영할 뿐이다. 특별한 건 없다.

‘연기’를 베이스로 하지만, 영화와 드라마와 뮤지컬은 그만큼 차이가 있을 텐데, 세 분야 사이 균형이라고 할까, 어떻게 중심을 잡는지.
세 개를 동시에 하지 않기에 균형을 맞춘다기 보다 차이점은 있다. 두 달 연습하고 무대에서 몇 달 공연하는 게 가장 안정적이고 컨디션 조절도 수월하다. 무대가 두려운 면도 있지만 가장 편안한 공간이거든. 영화와 드라마를 비교해보면 보통 드라마는 16부작 20부작으로 일주일에 두 편이 방영되니 어떻게 보면 일주일에 영화 한 편을 개봉하는 셈이다. 연기 분량과 대본이 많지만 분석하고 외울 시간만 충분하다면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는 맛이 있다. 그게 드라마의 장점이다. 반면 영화는 하나의 대본을 가지고 기본 서너 달에 걸쳐 촬영하니 충분히 완성도를 높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

어떤 점이 그런가.
보통 영화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로케이션을 많이 한다. 예를 들면 <명당>에 나오는 어떤 집의 경우 들어가는 입구는 안동, 그 내부는 문경, 별채는 민속촌, 방의 내부는 실내세트 이렇게 각각 다른 곳에서 촬영했다. 좋은 로케이션을 위해 신을 쪼개다 보니 연기 흐름을 이어 가기 힘든 면이 있다. 촬영 순서도 뒤죽박죽이고 말이다. 비유하자면, 나는 ‘땅!’ 소리 나면 앞만 보고 전력 질주해야 할 경주마인데 자꾸 달리다 서게 된다고 할까. 내가 아직 영화에 적응 못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직도 카메라가 부담스럽고 자꾸 의식하게 돼서 힘들거든. 아마 평생 갈 듯하다.

그렇게 불편한데, 계속하게 하는 동력은 뭘까.
음…. 카메라 앞에 섰을 때의 불편함이 한편으론 무대 연기에 새로움을 부여하고 시너지를 발휘한다고 본다. 무대 연기가 조금 과하고 정형화돼 있다면 카메라 앞에서는 자연스럽지 않으면 큰일 난다. 그렇게 상호작용하며 서로 다잡아 주는 것 같다.

드라마 <라이프>에 이어 이번 <명당>에서도 유재명 배우와 함께했다. 그와 호흡이 아주 좋더라.
처음엔 대화를 많이 했는데 작품을 같이 할수록 대화가 줄어들더라. 그만큼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한다고 할까. 같이 붙는 신의 경우 이젠 리허설하지 않아도 합이 척척 맞는다. 언젠간 연극도 함께 하고 싶고 앞으로 다른 작품에서 계속 만나고 싶을 정도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또, 내가 발산해야 할 에너지 크기에 대해 확신이 안 서는 경우 조언을 구하면, 막힘없이 바로 얘기해 준다. ‘아마도 이런 감정과 그 정도 크기의 에너지가 아니겠냐’고 얘기하는데, 본인이 나오는 장면이 아님에도 그렇게 전부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연출 출신이라 자기 연기만 보는 게 아니라 작품을 전체적으로 열어 놓고 파악하기에 가능한 거였다. 게다가 박학다식하고…마치 정신적 지주라고 할까.

초반 멜로로 관객을 찾았던 당신인데, 최근에는 장르물의 연속이다. ‘조승우’의 멜로를 기다리는 사람이 꽤 있다.(웃음)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닌데, 그간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무언가 사랑을 대놓고 표현하는 것보다 여러 방식으로 은은하게 표현하는 게 좋은데, 지금까지 제안받은 작품이 너무 1차원적이더라. 소위 ‘오글’거리는 거 말이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13살 삽살개를 키우고 있는데, 그 녀석이 배가 아파서 담낭 제거 수술을 해야 했다. 나이가 있어서 마취를 견딜 수 있을지 이후 합병증은 없을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수술 후 더 어려지고 밥도 더 잘 먹고 더 행복해 보인다. 단풍이 덕분에 행복한 요즘이다.


2018년 9월 22일 토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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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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