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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진실 박수칠 때 떠나라
vinappa 2005-09-16 오후 1:34:58 2064   [8]
주의 ; 스포일러로 시작해서 스포일러로 끝맺는 글입니다.

    한 스포츠 일간지의 연예면 기사를 뒤적거리다가 어이없는 칼럼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연예부 기자의 오픈 칼럼 형식으로 게재된 꼭지의 내용은 톱스타들의 인터뷰 기피증에 관한 것이었는데, 내용의 골자는 스타들이 사생활에 관한 부분을 필요 이상으로 감추려 한다는 것이었고, 기자의 태도는 '니들이 뭔데 대중의 관심을 무시하느냐'는 속물주의적 오만함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스포츠 일간지라는 매체의 특성상 무게있는 기사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인쇄매체의 격이라는게 있는데, 이건 해도해도 너무 한다 싶었다. 그리고, 정말 궁금해졌다. 언제부터 기자가 파파라치의 한자어 표기가 된 것일까? 그런데, 바꾸어 생각해보니 이 기자양반은 누군가의 강압에 부대끼다 못해 그따위 글을 썼고, 동시에 그글은 누군가의 욕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발동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권력은 소비자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소비자의 권력은 막강하다.미국의 A라는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가 승승장구할 수 있는 이유도 소비자라는 막강한 권력을 존중하고, 그 권력집단에게 기업의 흥망성쇠를 일임했던 경영철학의 결과다. 서두에서 언급한 어느 철딱서니 없는 기자의 글이 국내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어느 일간지의 자매지에 버젓이 칼럼으로 실릴 수 있었던 이유도 소비자의 욕구라는 막강한 권력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톱스타에게 있어서 대중은 소비자의 동의어다. 자본주의라는 체제안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대중은 스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한다. 아니,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심지어 그 스타들이 애써 감추고 싶어하는 은밀한 무엇까지. 그 막연하고 강압적인 욕구가 저 기자의 천박한 권위주의를 북돋웠으리라.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는 한 여성의 죽음으로 시작해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죽음 그 자체의 의미에 방점을 찍는 영화다. 진범이 누구인지, 직접적인 살해의 방식이 무엇인지, 살인을 충동한 원인이 무엇인지 등 살인사건을 둘러싼 인과관계는 함정이거나 맥거핀에 지나지 않는다. 주목해야할 것은 '죽음' 그 자체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정 유정이라고 하는 미모의 카피라이터가 장기투숙했던 호텔 방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다. 그녀의 몸에서는 아홉개의 자상이 발견되었고, 이것만으로도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할 수 있는 충분한 상황증거가 성립된다. 아마도 그녀는 꽤나 유명했었던듯하다. 사건이 발생하기 무섭게 매스미디어가 달려 들었고, 급기야 그녀의 살해사건 수사가 전국에 생방송되는 황당무계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사건 발생 한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체포된 유력한 용의자 김 영훈의 태도가 이상하다. 제 입으로 피해자 정 유정을 정말 죽이고 싶었다고 실토했고, 그에 더해 상황증거까지 포착이 되었는데, 혐의에 대한 부인이 너무 논리정연하다. 담당 검사 최 연기는 2형식이 어쩌고, 3형식이 어쩌고하면서 피의자의 발언권을 제약하지만 그것이 맡은바 소임을 완수할리 만무하다. 상대는 거짓말 탐지기까지 멋드러지게 농락할 정도로 치밀한 지능범이고, 이 사건에는 예상외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여인, 정 유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누군가 그녀의 몸에 칼을 꽂기 전에 이미 그녀는 시체였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한 무숙(한 동구 회장의 딸)과 한 무숙의 애인은 이미 숨이 끊어진 정 유정의 몸에 칼을 들이밀었고, 김 영훈은 휘발유 한통을 들고 그녀가 투숙한 객실에 찾아 들었다. 전자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후자는 제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것을 통탄해 한다. 그렇다면 문제의 여인 정 유정은 정말로 죽어 마땅한 인간이었을까? 영화는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분명 아니다. 그녀 정 유정은 거미줄처럼 엇갈린 이해관계의 희생양이었지 결코 죽어 마땅한 악녀가 아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세상 그 누구도 죽어 마땅한 인간은 없다. 그런데, 그녀를 둘러싼 소수의 사람들은 정 유정을 죽어 마땅한 여자라고 말한다. 왜? 무슨 이유로? 그녀의 애정관이 보편성의 기준에서 약간 벗어났기 때문이다.

    지상최대의 폭력은 바로 이 보편성이다. 그 편협하고 오만한 기준 때문에 털끝만큼의 도발도 덜컥 지탄의 대상이 된다. 지탄의 대상을 색출하고 심판하는 것은 언제나 미디어의 몫이다. 미디어 또는 방송은 대중의 단세포적 보편지상주의를 옹호하고 충동하며 명맥을 유지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대중의 알 권리를 충족시켰다고 주장한다. 이 허무맹랑한 주장의 배경은 대중의 속물근성이다. 대중은 미디어의 선정성을 비판하면서도 그 선정성을 유희하고 부추긴다. 이유는 그것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십여년전 걸프전을 생중계한 CNN 방송이 그토록 대중의 관심을 끈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대중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대중의 요구가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하게 밝히는 영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죽음' 그 자체의 의미에 주목해주기를 요구하는 영화다.

    여기서 잠시 몇개월 전 언론과 인터넷을 달군 영화배우 이 은주 자살 사건을 상기해보자. 대중과 매체는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가능성과 추문에 안테나를 세웠지 그녀의 죽음 그 자체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스물 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의 전도유망한 여배우가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에 대한 추도보다 저열한 추리들이 난무했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한 사람이 죽었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죽음을 추도하기는커녕 이왕 죽었으니 대중 앞에서 공식적으로 한번 더 죽으라고 덤비는 꼴들이라니. 이 영화에서 정 유정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그녀가 죽어가던 그 순간에 혼자서 감당해야했을 고통에 대해서는 누구도 가슴 아파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의 것들, 예를 들자면 추문과 은폐된 비밀들에 호기심을 가질 뿐이다.

    이 추악한 행위의 주체는 방송매체고 배후세력은 대중이다. 타자이기에, 직간접을 막론하고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삼자이기에 이들은 추호의 죄책감도 가지지 않는다. 스크린 안에서 검사 최 연기가 '왜'와 '어떻게'에 이목을 집중하는 것처럼 스크린 밖의 우리 모두도 그 '왜'와 '어떻게'에 집중했지 그녀의 죽음 그 자체에는 별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만신이 등장하고, 빙의된 PD가 정 유정의 설움을 토로하기 전까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죽어가는 그녀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에 대해서. 그 고독하고 지독한 순간을 넘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몸뚱이를 냅다 침범한 예리한 칼날의 비정함도. 심지어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 자체도. 그녀가 비통하게 죽었는데도 말이다. 영화는 그 비정한 선정주의의 틈새를 파고든다. 아니 호소한다. 제발 그녀의 죽음에 대해 단 한번만이라도 애도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죽음 그 순간의 고통을 만신의 입을 통해, 유령의 눈물섞인 미소를 통해.

    장르적으로 이 영화에는 특징이 없다. 블랙 코미디, 미스테리, 스릴러, 수사극, 오컬트, 공포까지 다양한 장르의 성향을 두루 드러내지만 이 영화에는 장르적 특성이 없다. 모든 장르가 소모품의 역할에 머무를뿐 주도권 쟁취에 별다른 의지를 비추지 않는 까닭에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애매하고 관습적으로 모호하다. 오로지 장 진식 스타일리즘, 예를 들자면 본론에서 벗어난 에피소드가 중심 드라마의 빈약한 행간을 보충하고, 빗발치는 대사에 의해 플롯이 완성되는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스타일만이 빛을 발한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주류 영화의 관점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솔직한 얘기로 주목받는 한국영화 중 장 진의 영화처럼 산만한 영화가 어디 있었던가. 때때로 주인공이 누구인지, 주된 플롯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중구난방으로 흐르는 영화이지만 어느 순간엔가 천연덕스럽게 제 자리로 돌아와 갈짓자 걸음에 대해서는 딴청피우는 것이 장 진의 영화다. 그 천연덕스러움이, 의도된 산만함이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맡은바 소임을 다 하고 있다.

    이를 가능케하는 것은 전적으로 장 진의 영화가 해체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까닭이고, 연극적인 설정들을 기피하지 않는 까닭이다. 연극의 무대가 시간보다는 공간에 의존하듯 그의 영화는 공간의 특성을 중시하고, 그것을 중심에 둔다. 뚜렷한 한가지가 있으면 주변의 것은 무시되어도 큰 줄기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장 진은 그 단순한 진리를 연출의 핵심으로 삼는다. 장 진이 이 영화에서 드러내고자하는 바는 죽음 그 자체의 무게이고, 그것을 상품화하려는 매스미디어의 스노비즘이고, 그것을 충동하는 대중의 욕구다. 욕구는 바꿔 말하면 시선이다. 레이저 광선도 아닌 것이 철판도 뚫어낼듯한 대중의 시선. 그 냉혹함과 탐욕스러움이 장 진이 까발리고자 하는 최종적인 목표가 아니었을까 싶다.

2005. 09. 16. 山ZIGI VINAPPA

(총 0명 참여)
sbkman84
뾁~~어렵게 쓰지마삼!   
2007-01-02 08:03
workat
솔직히 이런글 웃기다 짧은글로 표현하면 될것을 가지고
왜 길게 쓰는이유가 뭔가?   
2006-05-27 20:47
우리는 속물스런 방청객.. 왜 죽었느냐에만 혈안이 된.. 방청객.. 어린 무당이 거울로 쳐다보는 서늘한 시선을 느껴야 함을.. 장진 감독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2005-10-27 23:02
이은주 씨 얘기를 한 부분에서 뒷골이 싸~~ 해지네요. 시기적으로 맞물리지는 않지만, 결국 장진 감독은 어린 무당의 눈으로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2005-10-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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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 때 떠나라(2005, The Big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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