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 있고 성깔 있는 여자! 고전 무용 입문기
김옥빈은 ‘익스트림 사극’이라 명명되어진 여균동 감독의 영화 <기방난동사건>에서 기생 ‘설지’로 변신을 했다. ‘천둥’으로 발랄하게 변한 이정재와, ‘만득’으로 못되면서도 왠지 귀여운 김석훈을 적대관계로 만드는 역할이다. 여타의 영화들 속 기생들이 그러하듯, 김옥빈이 맡은 설지 역시 힘을 겨루는 남자들 사이에서 매력적으로 빛나야 했다. 그리고 그녀 때문에 남자가 목숨을 바치는 것이 당연시 될 만큼의 긍정적 요소를 온 몸에서 뿜어내야만 했다. “감독님은 포스를 원하셨어요. ‘그냥 넌 카리스마 있고 성깔 있는 여자야.’ 가만히 있어도 그림이 되는 그런 여인을 원하셨죠.” 하지만 감독이 원한다고해서 이런 것들이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의상이나 분장 등, 외적인 건 현장에서 다 만들어 졌어요. 그리고 연기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감독님의 디렉션을 많이 받았고요. 감독님은 내가 갖고 있지만 스스로 잘 모르는 것들을 자꾸만 찾아 주셨죠. 물론 개인적으로 영상 매체도 많이 봤고, 걸음걸이, 자태, 재주 등을 많이 배우려고 했어요.”
김옥빈의 말처럼 그녀는 영화의 춤추는 장면을 위해 하루에 2시간씩 고전 무용을 배웠다. 그동안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많았던 그녀지만, 기방에서 험상 굿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하얀 종이 위에 버선에 먹을 묻히고 춤을 추던 그녀는, 이제까지 그녀가 보여준 어떤 모습보다도 아름다웠다. “저도 이제까지 춤추는 장면 중에서 이번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고전 무용을 배우는 과정은 어떤 것보다도 힘들었어요.” 워낙에 춤을 잘 춘다고 듣고, 보았던 터라 그녀의 푸념은 귀여운 투정처럼 들린다. “처음에 호흡으로 뒤꿈치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춤추는 걸 봤는데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동시에 ‘저걸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도 들었고요. 실제로 배우면서도 여태까지 배웠던 춤들에 비해 호흡이라는 부분에 있어 많이 힘들고 벅찼어요. 고전 무용은 5초 동안 가만히 서있어도 춤이 되거든요. 그냥 그것 자체로 감정이니까.” 그녀의 말처럼 고전 무용이 ‘그것 자체로 감정’이라면 그녀는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성공한 것 같다. 그 장면에서 버선을 신고 사뿐히 춤을 추는 설지의 모습은 묘한 음악과 어우러져 그 순간의 모든 감정을 뿌려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가 한 것보다도 훨씬 잘 나왔다며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준다. “실제로 먹물을 찍고 몇 발자국 걸으면 먹물이 없어져요. 그래서 영화 화면에 나오는 그림은 CG가 더해져서 완성 된 거예요.(웃음)” 그리고 그녀의 웃음 뒤에 이어진 ‘왜 이렇게 재주가 많냐’는 주변의 질문에 아주 심플한 대답을 내놓는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별로 재주가 없는 거 같아요.” 이 무슨 동문서답이랴. 주변의 분위기가 갑자기 ‘이건 뭐야’ 분위기로 바뀐다. 주변의 반응을 보고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영화 하면서 배운 게 다예요. 영화에서 노래 부른 거나 춤 춘 거 때문에 앨범 낼 생각 없냐고 하는데, 정말로 재주가 없어서 절대 못하겠다고 얘기해요. 솔직히 나는 춤을 잘 춘 다기 보다 몸을 잘 쓰는 거거든요. 몸으로 표현하는 걸 잘 받아들이는 편이죠. 연기할 때도 ‘이거 되니? 되는 구나~! 오케이 찍자.’ 그런 거.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거뿐이지 그걸로 뭔가를 특출 나게 할 수 있을 만큼은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얘기 했지만 배우에게 이것이 꽤 좋은 요소라는 것은 그녀도 알 것이다. 몸을 표현 하는데 있어 자연스러운 것은 그냥 지나가는 인서트 컷에서도 다른 감각을 보여 주기도 하니 말이다.
기생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픈 여자! 설지 캐릭터 입문기
그녀가 출연한 <기방난동사건>은 근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CG가 강한 영화다. 그래서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서 저런 그림이 나올까를 예상했을까 싶을 만큼의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 돼 있다. 김옥빈에게 물으니 그녀도 몰랐다고 대답한다. “후반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감독님은 계속 아이디어가 샘솟아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3박 4일 세고도 남을 것 같이.(웃음) 후반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점점 더 추가 됐는데 영화가 70%정도 완성 됐을 때 ‘영화가 이렇게 나온다고요. 감독님?’ 그랬더니 ‘왜 마음에 안드냐?’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요. 전 너무 좋아요.’ 그랬거든요.(웃음)”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 대중들이 편안하게 받아들일까하는 우려도 있음을 얘기한다. “과장되고 컬트적인 느낌이 들더라도 좀 편하게 받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영화 보면서 의미가 뭘까, 메시지가 뭘까. 이런 것 보다는 그냥 ‘아~ 쟤는 저래서 웃기구나. 참 특이하다.’ 그래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개인적인 아쉬움을 전한다. 바로 자신이 연기한 설지에 대해서다. “영화에서 저는 다른 배우들 보다 너무 진지하잖아요. 찍을 때도 그랬고. 그래서 영화 나온 거 보고 감독님께 왜 이렇게 나온다고 얘기 안 해 주셨냐고 했어요. ‘그럼 나도 웃겼을 텐데’ 그러면서. 내가 너무 진지했던 게 좀 아쉬워요.” 그래서 그런가. 영화에서 설지는 도도한 느낌은 잘 살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평이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게 바로 그 문제예요. 감독님은 처음부터 이건 남자들의 이야기고, 그러니 설지는 캐릭터 범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셨어요. 하지만 몇 안 되는 씬에서라도 제가 쫌 탁탁 던져주면서 유머러스했으면 하는 느낌은 있더라고요. 물론 고전 무용이나 이런 것 때문에 씬은 많지 않았어도 보여 지는 이미지는 생각보다 컸지만요.”
캐릭터 범람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감독의 말처럼 <기방난동사건>에서 김옥빈의 감정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당연히 설지와 천둥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저돌적인 천둥과 달리 설지는 그 마음이 언제 부터인지 명확하지 않다. “천둥에 대한 관심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예요. 설지는 평양 기생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한양으로 온 여자거든요. 근데 눈앞에서 폼 잡고, 돈 자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질릴 때로 질려 있는 상태에서 뭔가 부족한 천둥이라는 남자가 자꾸 들이대니까 관심이 유발되는 거죠. 그러다가 위험한 순간에 가서 멀쩡한 놈이 나 때문에 죽게 됐구나 생각하니까 걱정을 하면서 자기 마음을 깨닫게 되는 거고요.” 천둥을 모른 척 하는 것은 기생으로서의 마음이고, 천둥에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여인의 마음이다. 그 사이를 얼마만큼 영리하게 왔다 갔다 하느냐가 김옥빈이 설지의 옷을 잘 입었느냐 아니냐의 갈림 길 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에 적절한 밀고 당기기가 되어 관객들에게 재미를 던져주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이제 관객들의 판단으로 넘겨진 일이다.
운이 좋은 여자? 주연 배우 입문기
김옥빈은 그동안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을 해왔다. 이번 영화나 <다세포 소녀>처럼 형식이 평범하지 않은 영화에도 출연 했고, 장르에 구분을 두지 않으려 한다는 그녀의 말처럼 공포영화나 사랑이 주가 되는 다수의 드라마에서도 얼굴을 보였다. 영화와 드라마, 모든 장르를 다 해보고 싶다는 욕심 많은 그녀는 사실, 처음 시작부터 지금까지 주연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챙겨왔다. 그러한 이유에 대해 김옥빈은 자신이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배우로서의 변신에 대해 이야기 한다. “영화나 드라마나 그 캐릭터에 맞춰서 분위기가 변신 되는 것 같아요. 연기는 못해도 이 옷을 벗겨놓고 저 옷으로 입혀 놓으면 그럴싸하게 어울려 보이는 거. 이번 영화에서도 다른 걸 다 떠나서 기생 캐릭터의 옷이 잘 어울린다고 말해 주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스스로가 운이 좋다고 말하는 김옥빈은 <여고괴담4>의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을 차지하며 세상에 나온 행운아다. 그때의 기억을 묻자 처음이어서 뭐든 신기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뒤로 알면 알수록 연기가 너무 어려워지고, 빈 곳을 채우려 노력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속내를 비친다. 그리고 자신의 후배들이 된 <여고괴담5>의 주인공들에게 한 마디를 덧붙인다. “<여고괴담>을 찍는 순간 재밌게 찍었으면 좋겠어요. 정말이지 그 순간을 최대한 즐겼으면. 그 이후로는 배워야 할 것들이 눈에 너무 많이 보이니까요.” 후배들에 대한 바람이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자신이 여러 작품을 거치면서 늘 배우고 연기에 대해 노력을 하지만, 그런 부분에 있어 큰 편차가 없다는 것은 그녀에게 장점이자 단점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지금 가진 걸 넘어서서 편차를 깨야 성공이냐 실패냐의 그런 것이 나오는 것 같아요. 나는 지금 물주기 단계에 있죠. 커나가고 발전하는 단계. 어느 현장에서든 안 배우고 오는 데가 없거든요. 배움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고 앞서 스코어가 어떻든 간에 언젠가는 폭발을 할거예요.”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감동과 웃음을 주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 면서도, 언젠가는 모든 것을 부수고 폭발하는 연기자가 될 거라는 그녀의 욕심이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참 당차고 씩씩해 보인다. 부디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와 함께 한 그녀의 차기작 <박쥐>를 비롯해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행보가 한걸음, 한걸음 배움에 있어 헛되지 않고 활기찰 수 있길 기대해 본다.
2008년 12월 3일 수요일 |
글_김선영 기자(무비스트)
2008년 12월 3일 수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