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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한 역할이 뭐 어때서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서영희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 2010년 9월 1일 수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또 복남이다.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에서도 복남이였는데.
그러게. 똑같은 이름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어? 또 복남이네? 또 내거네?” 이랬다.

복남이도 그렇지만 이제까지 맡았던 배역 이름 대부분이 친근하다. 끝순이(<마파도>) 명순이(<라이어>) 미자(<스승의 은혜> 미진이(<추격자>)…
(웃음)맞다. 럭셔리한 이름이 없다. 다들 너무 흔한 이름이지.

서영희는 본명이다. 신기하게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감독님 이름은 장철수다. ‘철수와 영희’ 초등학교 교과서 단골손님이었는데. 철수의 첫 장편 영화이자 영희의 첫 단독 주연이라 서로 의지도 됐겠다.
철수와 영희. 감독님은 내가 살면서 만난 철수 중에 가장 괜찮은 철수였다. 나를 많이 믿어주셨다. “영희씨는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하면서 의견도 존중해 주시고. 굉장히 조근조근 하시고, 많이 웃으신다. 촬영에 있어서는 고집이 있지만, 큰 소리를 지르는 스타일이 아니라 편하게 촬영했다.

기자 시사회 때, 감독님이 자작시를 지어 와 읊는걸 보고 독특한 분이구나 생각 했다.
나도 놀랐다. 그런데 독특하신 분은 아니다.(웃음) 그보다는 감독님이 영화 찍으면서 영화제용으로도 한 번 찍어보자고 했는데, 정말 영화제에 가게 돼서 신기했다.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됐었는데, 영화는 그 때 처음 본 건가?
그렇다. 너무 짧은 시간에 정신없이 찍은 것 같아서 사실 두려움이 많았다. 영화 끝나고, 사람들 얼굴 쳐다보기 민망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되고. 그런데 보고 나서, 창피하기는 하지만 숨어 다닐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이 내가 못했던 장면들을 다행히도 잘 편집해 줬더라.

다행이라고 느낀 게, 관객들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외국분들은 한국말을 몰라서 좋게 봐준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기자 시사회를 하기 전에, 긴장을 많이 했다. 기자 시사회가 조금 무섭잖나. 처음하는 사투리 연기이다 보니, 대사에 어색함이 느껴지면 어쩌지 싶었다. 결국 기자 시사회 때는 영화 끝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상영관을 빠져 나갔다.(웃음)
첫 시사회를 외국인들과 함께 한 느낌은 어떻던가? 새로운 경험이었을 텐데.
반응이 정말 다르더라. 영화제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리액션이 확실히 달랐다. 순간의 감정에 굉장히 솔직하다고 할까. 목 베는 장면에서도 우리는 보통 “아~ 끔찍해”하고 마는데, 그 분들은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오우~!”이러면서 환호도 해 주고, 반응이 재미있었다. 외국인 한 분은 복남이 (낫으로)목을 끝까지 벨 줄 몰랐다며 깜짝 놀라시는데, 그 분의 환호가 기억에 남는다.

수위가 센 영화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이런 영상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나?
글로 보는 거랑, 영상으로 보는 거랑은 다르잖나. 내가 잔인한 걸 별로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라, 읽을 때는 거기까지 상상을 못했다. 그래도 다 이유가 있는 복수고, 감정이 차츰 차츰 쌓이다가 풀어내는 복수였기 때문에 잔인하다고만 느끼지는 않았다.

<선덕여왕>과 함께 촬영했다고 들었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던가?
체력적으로는, 글쎄. <선덕여왕>에서 맡은 소화가 대사가 별로 없는 캐릭터여서 괜찮았다.(웃음) 더위가 조금 힘들긴 했지만, 다른 건 촬영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더위 애기가 나와서 말인데, 영화에서 ‘피칠갑’ 못지않게, ‘된장칠’도 나온다.(웃음) 그 더위에 된장 냄새가 얼마나 심했을까.
다행히 그건 조금 쌀쌀할 때 찍었다. 우리가 9월 1일에 크랭크인 해서, 10월 11월 이렇게 찍었거든. 다만 100% 된장이라 남편 만종 역의 박정학씨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마침 내가 던진 된장이 그 분 코로 ‘쿡’ 들어갔는데, 시체니까 ‘흥!’하면서 제거 하지도 못하시더라. 또, 우리가 예산이 부족해서 마네킹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체를 된장독에 묻을 때, 시체 다리가 보여야 했는데 마네킹이 없으니, 그 분이 직접 하셔야 했다. 말 못할 고생이 많으셨을 거다.

중반 이후에는 쾌감이 굉장히 큰 영화지만, 그 전까지는 상당히 괴로웠다. 같은 여자 입장이라 그런가 했는데, 함께 본 남자 기자들도 힘들다고 하더라. 연기자 입장에서 전반부를 찍을 때, 답답했을 것 같다.
남편의 구타라든지,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당하는 씬들은 괜찮았다. 이미 복남이 삶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의 죽음을 마을 사람들이 묵인하는 모습을 촬영 할 땐, 너무 답답했다. 마침 그 장면은 롱테이크로 촬영됐다. 넋 놓고 앉아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는데, ‘아… 여러 명이서 사람 한 명 바보 만드는 거 순식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일었다.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을 절감했다. 그 때 많이 힘들었다.

서영희에게도 그런 답답한 순간이 있었을 텐데.
있지. 사람과 사람간의 오해가 생겼을 때, 그런데 그 오해를 내가 가서 설명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 이미 상대는 자신이 믿는 게 진실이라고 결정한 거지. 오해는 내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때 정말 답답하더라. 잘못 전달되는 이 상황들. 그런데 나는 그럴 때 그냥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다. 자신이 보는 게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설명해봐야, 헛수고라는 생각에 손을 놓는다. 그 사람이 생각한 게 오해였다는 걸, 스스로 느낄 때까지 놔두는 거지. 그 사이에는 물론 답답하지만, 그렇게 하는 편이다.
참을성이 많은 건가?
참을성이라기보다, 변명하는 게 싫은 거다. 귀찮아하는 건 아닌데, 그냥 변명이 싫다.

복남이 경우는 결국 참고 참다가 낫을 든다.
복남이도 그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을 거다. 그냥 물 흐르듯 살려고 했는데, 딸의 죽음으로 그렇게 된 거지.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고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소중한 아이 아닌가. 그 아이가 왜 그런 일을 당했나를 생각했을 때, 그 잘못이 명백히 마을 사람들에게 있었기에 복남의 복수가 시작된 거다.

복남이가 복수를 하기 전에 하늘을 째려보는 씬이 인상 깊었다. 그건 어떤 행위일까?
태양은 정말 거대한 존재이잖아. 그 거대한 존재를 작은 내가 이겨 보겠다고 올려다보는 거다. 이겨 보자는 의지로 태양과 싸우는 느낌이랄까. 실제로 촬영 할 때, 눈이 엄청 부셨는데도 깜빡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태양과의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에, 복수에 나선 것일까?
싸워 볼 만 한 거라고 생각 했던 것 같다. 자신감도 생기고 정신이 번쩍 드는 계기가 된 거지. 그래서 복수를 결심 한 게 아닐까.

예전 인터뷰에서 사투리를 못하는 게 한이라고 했는데, 이번에 원 없이 했겠다.
서울 출신이라, 나에게는 사투리가 제2외국어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대사가 거의 전라도 사투리로 돼 있었다. 엄마가 전라도 출신이라, 대사를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엄마도 평소 잘 쓰지 않으니까, 너무 어색한 게 아닌가.(웃음) 그 때 엄마 목소리를 녹음 해 둔 게 있는데, 지금도 가끔 들으면서 배꼽을 잡는다. 아무튼, 그렇게 전라도 사투리로 시작했다가 촬영을 하면서 여러 가지 사투리가 섞였다. 특히 감독님이 어눌하면서 느릿하고, 어미가 “유~”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감독님이 좋아하는 느낌의 말들을 많이 구사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전라도 관객 입장에서는 리얼리티가 떨어지잖나.
그렇지. 말도 안 되겠지. 그래서 합리화를 하자면, 그게 ‘무도’의 말투인거다.(웃음) 원래 섬이라는 곳은 거기에서 자고 난 사람 못지않게, 외부에서 들어와 정착한 사람도 많잖나. 뜨내기들이 많이 흘러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전국 팔도의 지역 말투가 섞이게 된 거다. 또, 영화 속 ‘무도’가 없을 ‘무(無)’ 자를 써서 현실에는 존재 하지 않은 섬이다. 그런 식으로 합리화를 했다.

최고의 합리화가 아닌가 싶은데, 말은 된다.(웃음) 배우로서 본인의 캐릭터 이름을 내세운 영화에 출연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기회라는 생각도 든다. ‘강철중’도 그렇고, ‘삼순이’도 그렇고. 아무래도 캐릭터를 기억하는데, 좋으니까.
맞다. 정말 만나기 힘든 거다. 영화에서 여자가 그런 이름을 내세우는 것 자체도 되게 위험한 일인데, 일단 그런 시나리오 자체가 너무 드물다. 여자의 시점에서 그려진 영화를 만나기가 그만큼 어려운 거지. 그래서 내 배역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서라기보다, 이런 시나리오를 만났다는 것에 더 감사했다. 내가 과연 이런 기회를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이 영화를 더 하고 싶게 했다.
반면에, 이런 것도 있었을 것 같다. 질문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서영희는 왜 이렇게 박복한 역만 하냐는 질문 말이다. 그런 말을 듣다 보면, 은연중에 어두운 역할에 거리두기를 하려는 심리가 생길 법도 한데.
재미있는 게 좋다. 어떤 배역이 됐든, 그 인물이 영화 속에 존재하는 이유만 확실하다면 망가지든 뭐하든 상관없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심도 별로 없고. 뭐~ 예쁜 역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할 수 있는 거니까.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그 역할에서 내가 얻을 만한 게 있으면 된다. 그러면 된다.

연기파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배우는 많다. 그래서 노력하는 배우도 많다. 하지만,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던지는 배우는 너무나 드물다. 당신은 그 드문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생각 안 하나? 당신의 선택이 다른 배우들에게도 용기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대해선.
솔직히 내가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거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배우가 더 많을 거라고 본다. 얼마든지 망가질 준비가 돼 있는데, 그 기회가 나만큼 닿지 않는 거지. 아직 스타트를 못한 것뿐이다. 내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지만,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하기 싫어서 안 한다보다, 기회가 안 돼서 못 하시는 분들이 분명 더 많을 거다.

겸손한 말이다. 공감도 가고. <무법자> 개봉당시 배우 이승민씨 관련해서 기사가 뜬 게 있는데, 기사 타이틀이 ‘결혼 후 첫 작품 <무법자> 이승민, 제 2의 서영희로 불러주세요’ 였다.
나도 봤다.(웃음) 내가 억울한 피해자 1순위인가 보다. 하하하. 되게 민망하더라.

분명 칭찬이다. 사람들이 1호 배우라고 떠올릴 만큼 캐릭터를 잘 구축했다는 의미니까.
안다. 기사를 보고 좋았다. 기억에 남지 않는 배우였다면, 그런 말도 없었겠지.

당신의 그런 캐릭터를 가장 크게 부각시킨 건 <추격자>였다. 하지만 그 전에 출연한 <스승의 은혜> <궁녀>도 만만치 않은 캐릭터였지. 그런 역할을 하다보면 우울해지지는 않나?
우울할 때도 있는데, 그걸 오래 지니는 성격이 못된다. 이번 영화에서도 감독님이 편집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게, 컷 되는 순간 바뀌는 나의 모습이었다고 하더라. 울다가도 컷 하면, 바로 실실대니까. 그만큼 빨리 잊어버린다. 또 <선덕여왕>을 함께 했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하면서 마음 추스를 수 있어서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추격자>때는 <며느리 전성시대>를 함께 했는데, 이쪽에서 다운된 기분을 저 쪽에 가서 업해서 우울하지 않았고. 가장 힘들었을 때는 <궁녀>만 찍었을 때다. 그 때 대사도 감정도 아무것도 없는 시체 연기를 했는데, 가만히 누워있다 보니 우울한 생각이 계속 들었다. 배역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내 개인적인 생각에 빠졌던 거지. 내가 정말 죽으면 누가 와서 울어주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슬픔에 파묻히더라.
그 때 누가 떠오르던가?
글쎄, 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웃음) 엄마 생각. 친구들 생각. 많은 분들이 떠올랐다.

여기서 반대 질문을 던지자면, 당신은 연기 잘한다고 인정받는 배우다. 하지만 그게 과장된 배역 안에서 받은 평가인 경우가 많았다. 출연작들 대부분이 공포와 코미디 장르인 탓이 클 텐데, 개인적으로 당신이 조금 더 일상적인 배역에서 당신의 역량을 발휘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맞다! 오버하거나 극한 상황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많았다. 중간부분, 일상적이고 노멀한 역이 거의 없었지. 그게 나의 가장 큰 갈증이기도 하다. 내가 잔잔한 일본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표정만으로도 보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느끼게 해 주는 그런 역을 하고 싶은데, 이제껏 “나, 이래요!”하고 보여주는 역들이 많았다.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야지.

화끈한 액션씬은 없어도 은근히 운동 신경을 요하는 장면들이 있더라. <추격자>를 할 때, 욕실에 누워 있는 씬을 위해 액션 스쿨을 다녔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준비가 없었나?
<추격자> 때는 액션 스쿨에서 사전 리허설을 굉장히 많이 했다. 왜냐하면, 욕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너무 협소했고, 생각보다 위험 요소가 많았거든. 당시의 씬들이 해머로 나를 찍으려는 지영민(하정우)를 피해 온 몸이 묶인 상태에서 도망 다녀야 하는 거였다. 그래서 가상으로 욕실을 세팅한 다음,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등을 사전 연습했다. 사실 그 때는 이유를 잘 몰랐다. 현장에서 그냥 하면 되지, 왜 이렇게 연습을 하나 하고 말이다. 그러데 손발이 묶이니까 넘어지고 구르는 게 정말 힘들더라. 연습을 통해 어느 부분을 써야 하고, 어디를 조심해야 하는지를 느끼고 나니까 실제 촬영장에서 수월했지, 아니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다. 위험한 장면은 사전 리허설을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거라는 걸, 그 때 알았다. 그에 반해 이번 영화에서는 기술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리허설만 살짝 하고 대부분 생으로 부딪혔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충무로에서 반응이 양분된 작품이다. 칸에서도 악평과 호평이 오간 것으로 아는데, 이런 여러 가지 반응이 오는 건 어떤가?
감사하지. 평가는 둘째 치고,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솔직히 스타성 있는 영화가 아니잖나. 그래서 지금은 악평도 너무 반가운, 그런 시점이다. 칸에 가기 전에 “너무 한가해도 바닷가에서 소주는 마시지 마, 와인 마셔” 이러면서 등 두르려 주는 지인들이 많았다.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막상 칸에 가도 할 일이 없대”라고 하면서. 그런데 갔더니, 너무 바쁜 거다. 밥 먹을 시간 없이 인터뷰가 계속 들어오고. 저녁마다 파티에 초대 받고. 감독님은 더 바쁘셨다. 그런데 넋이 빠져서 (유령 같은 표정 지으며)이렇게 다니면서도 사진은 잊지 않고 꼭 찍으시더라. 인증샷이라며.(웃음) 바쁘지만, 너무 즐거운 영화제였다.
호평이건, 악평이건, 어떤 작품이 논할 거리를 제공 한다는 건, 유익한 거라고 본다.
동감한다. 어쨌든 영화를 보니까, 그런 논란도 생기는 거고. 또 어떻게 100이면 100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겠나.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지적해 주는 건, 그만큼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솔직히 모자란 부분에 대해서는 찍은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래서 개인적으로 내 앞에서 칭찬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칸에서 외신과 인터뷰 할 때, 어떤 걸 많이 궁금해 하던가.
일단 “정말 그런 섬이 있느냐”하는 질문을 많이 하더라.(웃음) 그리고 내가 작품적으로는 <추격자> 이후 두 번째 간 건데, 그걸 기억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마침 같은 스릴러 장르이고 하다 보니, “그런 사건들이 한국에는 정말 많냐”는 말도 안 되는 별 세계 이야기를 묻는 분들도 있었다. 그 외에는 국내 인터뷰와 비슷하다. “다음에는 어떤 장르를 하고 싶냐”하는 이런 질문들. 통역을 통해 전달해야 해서 안타깝기는 했지만, 재미있었다.

왜, 그런 의미 있는 자리에 가면 여러 가지 감회에 젖잖나.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기도 하고, 앞날에 대한 생각도 떠오르고.
과거는 안 떠올랐고, 앞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꿈이 되게 구체적으로 잡혔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칸,칸,칸’ 이랬는데, 지금은 ‘칸 경쟁 부분에 나를 위한 레드카펫을 밟고 싶다’는 정확한 꿈이 생겼다.

고3때까지 미대 입시를 준비하다가 미술 학원 옆에 있는 연기 학원에 덜컥 등록해서 여기까지 왔다. 원래 즉흥적인 면이 있나?
뭔가를 배우는 것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피아노 학원, 속셈 학원, 주산 학원, 운동 학원, 미술 학원 등 학원을 정말 많이 다녔다. 또 왜, 학원에서 주는 노란색 가방 있잖나? 그게 너무 들고 싶어서 일부러 가방을 여러 개 들고 다니곤 했다. 가방 하나에 책들을 몰아넣어도 되는데 말이다.

집에서 지원을 많이 해 줬나 보다.
내가 욕심은 많은데, 끈기가 없다. 고마운 게, 한 달 배우고 재미없으면 때려치우곤 했는데, 그 때마다 엄마가 “그래? 그럼 또 뭐 배우고 싶어?”이러면서 다른 걸 하게 해 줬다. 그 때 경험이 지금 연기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잘 하지는 못해도 어색하지 않게 피아노 앞에 앉을 수 있고, 어색하지 않게 악기를 잡을 수 있고 하니 말이다. 엄마한테 고맙다.
배운 것 중에 특이하다 싶은 게 뭔가?
민요? <전원일기>를 보는데, 어른들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이 다 노래 같고, 너무 구성진 거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또 판소리를 좋아해서 <서편제>가 나왔을 때,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민요를 배웠는데, 신기하게 대학을 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게 특기가 됐다. 마침 내가 간 학교(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가 한국적인 걸 좋아하는 곳이어서 잘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준비가 돼서 합격을 했다.

당신의 작품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당신의 작품을 하나 추천한다면, 어떤 걸 고르겠나.
음…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웃음)

홍보성 발언인가.(웃음)
(웃음)정말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건 첫 작품인데, 처음 보시는 분들은 거꾸로 관람하는 게 나에게 좋을 것 같다.

첫 작품이 <질투는 나의 힘>이었지, 아마?
맞다. 거기서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의 하숙집 딸을 연기 했는데,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연극영화과를 나와서 연극무대, 드라마 영화까지 빠르지는 않지만 하나하나 잘 밟고 가는 느낌이다. 그 시간 중 큰 위기라 생각했던 때가 있다면 언제인가.
그 때였던 것 같다. <궁녀> 할 때. 그맘때가 우울했던 시기다. 누군가가 아픔을 준 건 아닌데… 아! 아픔이 있기는 했다. 친구들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세상이 정말 내 맘 같지 않구나’, ‘이렇게 우울할 수도 있구나’ 하면서 혼란스러웠다. 또 20대 후반, 내 나이를 생각하니까, ‘지금까지 내가 뭐 했지?’, ‘이게 맞는 건가?’, ‘내가 잘 살아 온 건가?’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서 집에서 찌증도 많이 냈다. 인터뷰하다가 운적도 있다니까.

특별한 질문을 받아서?
아니. 그건 아닌데~(웃음) 그 때가 아마 이맘때, 장마철이었을 거다. 비 때문에 서울 교통이 마비되고, 여의도 일부가 침수되고, 어쨌든 날씨가 되게 우중충한 날이었다. 그때 신문사를 돌면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 날 신문사에 앉아 있자니 우울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인터뷰 하다가 나도 모르게 툭 하고 울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되게 웃긴다. 그 상황이.(웃음)

다행히, ‘서영희, 인터뷰 하다가 갑자기 울다!’ 이런 제목의 기사는 안 나갔나보다.
(웃음)이상한 시기였다. 나는 우울한 사람이 절대 아니거든. 내가 맡았던 역할들 때문에 그렇게 보시는 분들도 있지만, 밝은 편이다. 또 ‘잊자’ 주의여서. 슬픈 건 빨리 잊는다. ‘잊고 살자, 잊고 살자’ 하다보면 진짜 기억이 잘 안 난다. 누가 언제 울어봤냐고 물어보면, “어? 내가 언제 울어봤지?” 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고민이 있다면?
고민? 고민이라. ‘영화가 잘 될까?’가 현재는 정말 가장 큰 고민이다. 그러고 나서 고민은… 없다. 정말 심각할 정도로 별로 없다.

시트콤 <그분이 오신다>에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다가 옛 애인과의 사진으로 모든 걸 잃고 추락한 삼류 배우로 나왔다. 시트콤에서의 캐릭터는 특유의 낙천성으로 위기를 잘 빠져나가는데, 만약 당신에게도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떨 것 같나?
나도 잘 이겨나가지 않을까? 그 시트콤 속의 캐릭터와 내가 되게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그 인물만큼 내가 스타가 아니라는 거, 그리고 큰 사고를 칠 만한 대범함이 없다는 거.(웃음) 그 나머지는 다 똑같다. 그런데 배우는 다들 똑같지 않을까 싶다. 말로는 매일 “그만 두고 싶다, 그만 두고 싶다” 이러지만 일 할 때 가장 행복해 하고, 촬영 할 때 가장 행복해 하고. 약간 마약 같은 그런 게 있다, 연기에는.

차기작으로 신현준, 정준호씨와 함께 <조지와 봉식>에 들어간다고.
지금 촬영 중이다.

다시 코미디로 돌아가는 건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장르는 코미디인데 나에게는 전혀 코믹적인 요소가 없다.

‘안타깝게’가 아니라, 오히려 더 좋은 게 아닌가.
맞다. 솔직히 나는 더 좋다. 내가 말을 재밌게 하는 스타일도, 웃기는 재능을 지닌 사람도 아니니 말이다. 코믹 연기를 잘 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해야지.

2010년 9월 1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0년 9월 1일 수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32 )
sdwsds
이제는 연기파배우   
2010-09-04 01:20
g147423
좀 다양한 역할 좀 맡았으면;   
2010-09-03 23:33
maline
이분 너무 좋아용   
2010-09-03 11:25
jaraja70
너무나 매력적인 배우같애요   
2010-09-03 00:59
mobee00
무서울것 가틈..   
2010-09-02 15:51
ggang003
복남이 빨리 보고 싶어요   
2010-09-02 10:49
ldh6633
잘봤어요~   
2010-09-02 09:11
tange100
잘보고갑니다.   
2010-09-02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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