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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하게 고통을 들여다본다... 애프터 루시아
ldk209 2013-10-08 오전 11:25:04 1187   [1]

 

무미건조하게 고통을 들여다본다... ★★★★☆

 

※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주요한 설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한 소녀가 왕따를 당하는 이야기라는 것만 안 채 <애프터 루시아>를 보게 되었다. 첫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이 영화가 매우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영화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애프터 루시아>는 한 동안 지켜보아도 관객이 영화 속 부녀인 로베르토와 알레한드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기 어렵게 매우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한다. 차량 뒷좌석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은 채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첫 장면, 무슨 이유에선지 사고로 수리가 끝난 차량을 운전하던 로베르토는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에서 갑자기 차키를 빼고는 차에서 내려 어디론가 사라진다. 대체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뭐가 있겠는가.

 

그리고 로베르토와 알레한드라는 승용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한다. 딸이 아빠에게 묻는다. “그 차는 어떻게 했어” 아빠가 대답한다. “팔았어” 우리는 아빠의 대답이 거짓이라는 걸 알 수 있지만, 처음에 등장한 그 차가 딸이 얘기한 그 차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멕시코시티의 새로 이사한 집에 도착한 로베르토는 주방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다. 큰 덩치의 남자가 울먹이는 장면은 뭔가 감정을 자극하긴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의문부호만이 머리를 장식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은 비로소 로베르토의 아내이자 알레한드라의 엄마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둘은 아내이자 엄마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고통과 씨름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보험회사와의 통화를 미루어 짐작컨대 아마도(!) 엄마의 죽음엔 로베트로의 과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 안에 갇힌 채 괴로워하는 로베르토와 달리 알레한드라는 타인과의 소통, 그리고 배려를 통해 고통을 극복하려 시도한다. 아버지에게 혼이 난 주방 조수에게 찾아가 요리를 알려주는 알레한드라의 모습은, 고통을 극복하려는 그녀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설명이 극히 제한된 영화적 특성상 내가 그렇게 느낄 뿐이다. 다음과 같은 장면. 로베르토는 식당 주인과 주방 보조들의 사적 농담이 오고가는 주방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겠다며 밖으로 나가 버린다. 로베르토가 아내에 대한 죽음에 따른 내적 고통으로 힘들어하다 그만 둔 것인지, 주방에서의 사적 농담조차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라서 그만 둔 것인지, 또는 다른 이유에 의해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단지 추정할 뿐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고통을 극복하려던 알레한드라에게 또 다른 고통이 덮친다. 친구들과 부유한 호세의 별장에 놀러간 알레한드라는 술에 취해 호세와 성관계를 가지게 되고, 호세는 이 장면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촬영한다. 그리고 이 영상은 누군가에 의해 유출되고, 알레한드라는 아이들로부터 지속적인 폭행을 당하게 된다. 누군가는 호세와 알레한드라에 대한 질투심으로 누군가는 남성성 과시로 고통을 가한다. 어머니의 부재에 따른 고통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풀려던 알레한드라가 아이러니하게 타인으로부터 고통을 받게 되는 상황은 그녀에게 더 이상의 탈출구가 없음을 의미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고통에 갇혀 딸이 보내는 SOS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녀는 이 끔찍한 상황을 혼자 겪어 내야 한다.

 

<애프터 루시아>는 103분이라는 상영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는 영화다. 이건 지루하다거나 하는 의미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본다는 그 자체가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화는 그 고통을 발산하고 폭발함으로서 관객의 숨구멍을 틔워주지도 않는다. 카메라는 내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기만 할 뿐이고, 긴 테이크는 관객을 그저 지켜보는 입장에 묶어 둠으로써, 관람(!)에 따른 고통을 가중시킨다. 이건 마치, 조금이라도 알레한드라의 고통을 느껴보라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알레한드라가 사라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는 딸이 극심한 고통을 받아 왔고, 아버지로서 딸의 고통을 보듬어 주기는커녕 자신만의 고통에 갇혀, 모른 채 했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명확히 설명하지 않지만, 알레한드라의 동영상을 유출한 당사자는 호세였을 것이다. 부유하고 플레이보이인 호세는 자기 과시를 위해 동영상을 유출했으며, 그럼에도 그로 인해 알레한드라가 당하는 고통을 구경하기만 한다. 심지어 알레한드라를 도닥여 주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서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안겨주기조차 한다. 아버지는 딸이 받은 고통의 원인이 호세에게 있었음을 바로 직감한다. 롱테이크로 시작해 조용히 이어오던 영화는 역시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결말의 복수(!) 장면으로 조용히 막을 내린다. 복수의 쾌감은 제공되지 않는다. 아니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면 그건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 도저히 두 번 보기 힘든 영화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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