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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꾼으로의 재능...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ldk209 2010-05-06 오전 7:48:39 781   [4]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꾼으로의 재능...★★★

 

영화의 무대는 임진왜란이 눈앞에 닥친 1592년. 정여립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무리들은 썩어 빠진 조정을 대신해서 왜구에 맞서기 위해 ‘대동계’를 조직한다. 그러나 집권당이었던 서인은 이를 동인이 중심이 된 반역 집단으로 몰아붙여 가혹하게 처벌하고, 동인은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워 모른 척한다. 정여립이 죽은 후 대동계의 수장이 된 이몽학(차승원)은 세도가인 한신균 일족을 학살하고는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조정을 상대로 전쟁에 돌입한다. 그러나 정여립의 친구이자 대동계 일원인 맹인 검객 황정학(황정민)은 이몽학을 막기 위해 한신균의 서자인 견자(백성현)와 함께 이몽학의 뒤를 쫓게 되고, 이 와중에 견자는 이몽학의 여인인 백지(한지혜)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박흥용 화백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다. 사실 이런 제목의 만화가 있었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에 원작과 비교를 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다른 곳의 글을 참조해 보자면, 원작은 주로는 화자인 견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어떻게 보면 견자의 성장담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한다. 이러한 원작이 영화로 옮겨오면서 황정학과 이몽학의 비중은 견자와 견줄 정도로 (사실은 그보다 넘칠 정도로) 커졌고, 그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나름의 비중으로 이야기의 가지를 쳐나간다.

 

이처럼 주요한 많은 인물의 등장과 다채로운 이야기는 이준익 감독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잠깐 등장하는 인물에게도 나름의 전사를 제공하고 그에 따라 이야기의 갈래가 뻗어나가는 것을 보노라면 이준익 감독이 술술 풀어놓는 얘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이야기의 완성도 여부를 떠나서 그렇다는 얘기다.

 

많은 글에 나와 있듯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이준익 감독이 가장 좋아할만한, 그리고 가장 잘할만한 영화라는 건 확실하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관료들과 지배층들은 오로지 당파적 이익에만 몰두해 있고, 서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제사상에 술도 한 잔 못 올리는 부조리한 세상. 이런 부조리한 세상을 혁파하기 위해 민중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지만, 꿈은 꿈일 뿐,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하나같이 실패한다. <황산벌 전투> <왕의 남자>에서 했던 얘기도 대동소이하다.

 

이준익 감독이 잘할만한 영화라고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물은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는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크게 다가오는 문제는 캐릭터 조형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황정학, 이몽학과 함께 영화를 이끌어가는 견자는 이 문제에 있어 가장 심각한 지점이다. 얼치기 반항아 내지는 그저 말썽꾸러기 정도로 비춰지는 견자의 무모할 정도의 복수심도 그렇고 황정학과 백지에 대한 감정도 선뜻 와닿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를 비교해 견자가 한층 성장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견자의 검술 훈련도 밀도와 치밀함에서 너무 허술해 그저 코미디 또는 판타지에 불과한 듯 느껴진다.

 

여기엔 연출의 문제와 함께 백성현의 연기도 한 몫을 담당한다. 캐릭터에 이입되지 못했기 때문인지 백성현의 연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소리 지르는 것 외엔 보여주는 게 없다.(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지만) 사실 이준익 감독의 연출이 연기력을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취급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지금까지 나온 이준익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상당히 떨어진다고 보인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기파 배우인 황정민과 어쨌거나 제몫을 하는 차승원 사이에서 백성현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내내 헤맨다. 그러다보니 셋의 균형이 깨지면서 산만한 느낌과 함께 특히 극을 이끌어왔던 황정학이 퇴장하면서 늘어지고 지루해진다.

 

백지 역을 맡은 한지혜는 한마디로 안습이다. 확실히 이준익 감독이 그리는 여성은 대체로 전형적이거나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단순성에 기반해 있는 듯하다. 이처럼 허물어진 캐릭터 사이의 관계를 그나마 버텨낸 건 거의 전적으로 황정민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라면 황정학이 화자 역할을 맡았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아쉬워진다.

 

더불어 아쉬운 점은 이몽학의 캐릭터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이몽학의 송곳니일 것이다. 무슨 뱀파이어도 아니고, 웬 송곳니를 저리 날카롭고 길게 만들어 놨을까. 악인의 상징일까? 영화는 중반부까지 이몽학과 황정학의 대립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세력 내의 노선 대립으로 이해되도록 하는 측면이 존재했고, 그만큼 이몽학의 캐릭터는 풍부했다. 그러나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이몽학이 전형적인 악당임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영화의 진행은 뻔한 결말로 치닫기 시작했고, 그만큼 재미는 반감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몽학을 전형적 악당으로 설정한 것은 대중적 흥행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이준익 감독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주는 여전히 눈여겨볼 지점이다. 특히 사극에서 다루는 현대 한국 정치의 문제는 노골적이긴 해도 날카롭고 유머가 넘친다. 물론 이는 당쟁이라는 정치적 대립의 부정적 측면만을 부각한 것으로 일정한 한계를 담고 있기는 하다. 현대 정치에서도 보듯이 조선시대의 당쟁도 서로 경쟁하는 관계 속에서 분명 긍정적 역할을 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영화를 보면서 생각난 것 하나는 1592년에 조선은 망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는 약 500년간 유지되었고, 이는 중국의 왕조나 일본 막부의 유지기간과 비교해볼 때 약 두 배 정도 더 긴 시간이다. 일부 자료에 의하면 선조가 일본을 피해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는 백성들이 선조의 행차에 돌을 던졌다고 한다. 봉건왕조에서 백성이 왕에게 돌을 던진다는 것은 이미 그 왕조의 생명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역사에 가정법은 통하지 않지만, 차라리 1592년에 조선왕조가 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등장했더라면 그 이후의 한반도 역사는 훨씬 긍정적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 정여립은 여러 사료에서 극단적 평가가 담겨 있는 인물인 듯하다. 영웅심리와 권력욕에 사로잡힌 반역자라는 평가와 함께 왕조시대에서는 품기 힘든 혁신적 사상을 제시한 선구자로도 평가된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정여립은 왕이 핏줄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 의문을 품고 돌아가며 한다든가, 아니면 국민의 지지(당시로는 양반을 의미하는 것이겠지만)를 받는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자들에게 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혁명가라 아니할 수 없다.

 

※ 사실 나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의 용어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은 일본이나 청을 오랑캐로 여겨 우습게 알았고, 따라서 이들의 침공을 亂으로 규정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국제정세에 대한 안이한 인식과 과도한 성리학 신봉이 국란의 원인이 된 것이다. 예전에 이런 문제의식 하에서 임진왜란은 조일전쟁, 병자호란은 조청전쟁으로 불러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한번쯤은 생각해볼만한 주제인 것 같다. 

 


(총 0명 참여)
qhrtnddk93
그렇네요   
2010-05-16 19:05
k87kmkyr
볼만해요   
2010-05-15 12:25
man4497
감사   
2010-05-07 17:11
jhee65
잘 봤습니다   
2010-05-06 21:07
smc1220
감사   
2010-05-06 17:49
1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제작사 : (주)타이거 픽쳐스, (주)영화사 아침 / 배급사 : (주)SK텔레콤
공식홈페이지 : http://www.cloud2010.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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