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기자간담회. 박찬욱 감독 “밥 먹고, 길 걸으면서도 관능성을 느끼는 게 사람”
아가씨 | 2016년 5월 26일 목요일 | 이지혜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지혜 기자]
<아가씨>(제작: 모호필름ㆍ용필름) 기자간담회가 25일(수) 왕십리CGV에서 열렸다. 언론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박찬욱 감독과 배우 김민희와 김태리, 그리고 조진웅과 하정우가 참석했다.

<아가씨>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는 아가씨와 그녀를 둘러싼 후견인 이모부, 사기꾼 백작, 그와 거래한 하녀의 4각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제 69회 칸 영화제에 진출한 <아가씨>는 전 세계 176개국에 수출되며 한국영화 사상 최다 수출 기록을 경신한 바 있다.

소설 ‘핑거스미스’를 영화로 각색한 이 작품에서 배우 김민희는 아가씨 역의 ‘히데코’를, 김태리는 하인 역의 ‘숙희’를 맡고 조진웅과 하정우는 각각 후견인 이모부인 ‘코우즈키’와 사기꾼 백작 역을 맡았다.

영화 <아가씨>는 오는 6월 1일 개봉 예정이다. 아래는 박찬욱 감독과 배우의 일문일답.

첫인사

박찬욱 감독(이하, ‘감독’):
칸 영화제에 갔다가 상도 못 받고 빈 손으로 돌아온 박찬욱이다(웃음). 그래도 거의 모든 나라에 <아가씨>를 수출했다. 감독의 입장에서 내가 만든 영화가 투자자들에게 손해만 안 끼치길 바랄 따름인데 수출이 많이 돼서 큰 걱정은 조금 덜었다.
하정우: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
김민희: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김태리: 감사드린다. 영화를 재밌게 보셨길 바란다.
조진웅: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아가씨>가 소개되는 자리다. 굉장히 긴장된다.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영화를 두 번 보면 더 재밌을 것 같다. 연출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뭔가?

감독: 데뷔작을 만들 때나 영화 연출 초기에는 관객이 많이 들길 바랐다. 그런데 몇 편 만들다 보니 오래 기억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지더라. 고전이 돼서 백 년 후에도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되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블루레이로 만들어져 10년, 20년, 심지어 우리 자식 세대도 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창작자로서 제일 큰 소원이다. 그래서 당장 한 번 봤을 때의 재미도 중요하지만 두 번, 세 번 봤을 때도 영화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두 번 보는 게 더 좋은 이유는 영화의 구조 때문이 아닐까. 1부가 끝날 때쯤 이야기의 비밀이 밝혀지잖나. 2부로 넘어가서 영화를 볼 때는 영화가 달리 읽힐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말하는 사람의 얼굴만 봤지만 2부에서는 말을 듣는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되겠지. 이러한 효과를 위해 인물들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했다.

<아가씨>는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소설을 영화화한 이유는 뭔가?

감독: 임승용 프로듀서가 원작을 먼저 발견해 영화화를 제안했다. 원작에서 내가 반했던 점은 구조적인 특징이다. 한 사건을 다른 눈으로 보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잖나. 진실을 알고 볼 때와 모르고 볼 때는 같은 사람조차 달라 보인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비슷한 느낌으로 연출했다. 또한 소설에서 이빨을 갈아주는 대목을 영화로 보고 싶더라. 이 장면을 구성할 때 대화하는 느낌이 담기길 바랐다. 정사 장면에서는 단순히 욕망을 분출하는 게 아니라 서로 대화하는 느낌, 교감하고 배려하는 느낌, 친밀감이 교류되는 느낌을 담아내고 싶었다.

<스토커>에서도 그렇고, 이번 작품에서도 성적행위가 아닌 데서 관능성을 드러내더라. 이렇게 연출하는 이유는 뭔가?

감독: 실제 생활에서 누구나 겪는 관능성이다. 같이 밥을 먹어도, 길을 걸어도 얼마든지 관능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게 사람 아닌가. 설사 성행위를 하더라도, 성행위에는 성욕의 해소뿐만 아니라 여러 감정들이 개입할 수 있다. 영화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감정을 드러낼 때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는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곤 한다. <아가씨>에서도 결말에 이르러 어김없이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더라.

감독: 글쎄, 내 영화치고는 아주 얌전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는데(웃음). 잔인함 측면에서 내게 실망했다, 이게 뭐냐는 얘기도 들었다(웃음). 결말 부분은 어차피 고문하고 고문 당하는 장면이기에 어느 정도의 폭력성은 피해갈 수 없다. 그렇지만 살이 잘리는 단면이 보이는 숏은 없다. 소리와 표정 등으로 묘사해서 넘어갔다. 오히려 내게는 히데코의 행동이 더 잔인해 보이던데(웃음).

<아가씨>의 류성희 미술감독이 한국 최초로 칸 영화제의 벌컨상을 받았다. 미쟝센을 구성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감독: 류성희 미술감독이 받은 상은, 영상 및 소리 전 분야의 진짜 전문가들이 준 상이다. 그만큼 그 분야 종사자들에게 무척 중요한 상이다. 류성희 미술감독도 벌컨상을 받는 게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 하더라. 벌컨상이 <아가씨>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지만 류성희 미술감독의 경력을 인정해준다는 의미이기도 할 거다. 반대로, 내가 기여한 부분도 조금은 있겠지(웃음). 나도 덩달아 뿌듯하다. <아가씨>에서 미술은 다른 작품보다 훨씬 중요했다. 미술적 요소가 집약된 집은, 명실상부 5번째 주인공이라 할만하다. 이 집은 조선식, 일식, 양식이 다 섞여 있으면서 때로는 조화롭고, 필요에 따라서 이질적으로 보이는 공간이다. 정말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특히 서재가 대표적이다. 전체적인 외경은 일식인데 서재의 내부는 양식의 도서관이다. 그러면서도 복도가 기울어져 있고 다다미가 있어 구두를 벗고 들어가야 한다. 일식의 무대가 한 복판에 있고. 이곳을 꾸밀 때 우리의 목표는 상류계급의 내면 풍경을 시각화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아름답고 멋지게, 압도적으로 꾸미는 건 우리의 목표가 아니었다.

문소리가 작은 역으로 출연했더라. 출연한 계기는?

감독: 문소리와 작업하는 건 내 오랜 소망이었다. 동생과 함께 연출한 <파란만장>에 문소리가 출연하기로 돼 있었는데 그녀가 임신해서 촬영 당일에 무산됐다. 대신 내 동생이 혼자 만든 <만신>이란 장편영화에 출연했는데 문소리의 연기가 참 소름돋게 좋더라.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났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연기였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꼭 모시고 싶었다. <아가씨>에서 코우즈키 백작에게 얼굴을 잡혀 흔들리는 장면이 있다. 여기에서 문소리가 그 모욕감을 참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책을 보는 장면은 볼 때마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칸 영화제에서 <아가씨>가 남성적인 시선으로 성애를 묘사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감독: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다. 그 분에게 어떤 장면 때문인지 물어보고 싶다. 앵글 때문인지 시선 때문인지, 시선 때문이라면 어떤 점 때문인지 구체적을 질문해주면 대답해줄 수 있을 텐데. 정말 모르겠다.

정사신에서 영상미가 좋더라.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김민희: 상황의 감정에 충실하고 그 장면을 잘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태리: 대사가 맛깔나고 재밌다는 게 시나리오의 매력이다. 그런 장점들이 베드신에서도 빛을 발한 것 같다.

김민희의 경우,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도 한 가지 사건을 두 개의 시점으로 그리는 연기를 했다. 이처럼 한 가지 일을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관점에서 그리는 연기를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김민희: 아가씨의 감정은 숨겨져 있다. 각도에 따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감정을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태리: 처음에는 다 다르게 표현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혼란스럽더라. 감독님과 상의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그냥 숙희 자체를 표현하기로 마음 먹었다. 1, 2, 3부를 각기 달리 표현하려고 하기 보다는 흐름을 지키려 했다.

히데코를 마치 아이처럼 바라보는 숙희가 인상깊다. 여성들의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고민을 담아 연기를 했나?

김민희: 시나리오가 참 재밌더라. 이들에게 공감하며 읽었다. 관객들 역시 그 장면을 이해하고 감정에 빠질 수 있도록 연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김태리: 동성애에 대해 많은 분들이 질문을 하더라. 그런데 나는 시나리오를 읽으며 여성의 사랑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 감정이 자연스레 다가왔다. 관객들 역시 별다른 무리 없이 잘 이해했으리라 본다.

김민희의 연기 인생에서 <아가씨>가 어떤 포인트가 되리라고 보나?

김민희: 지금까지 해 온 작품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매 작품에 최선을 다한다.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모든 작품이 다 소중하고 각자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결과와 상관없이 계속 과정을 중시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고르려 한다.

하정우와 사기꾼 백작이 닮았다 하더라. 본인이 느끼기에는 어떤 점이 닮았나?

하정우: 잘 모르겠다(웃음). 전작 <멋진하루>의 조병운이 그나마 나와 가장 닮은 캐릭터인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그와 어디가 닮았냐고 묻는다면……(웃음). 아마 적극적이고 경쾌하고 생존 본능이 강한 게 닮지 않았을까.

사기꾼 백작은 두 여자한테 굴욕을 당했다. 와인 키스신도 그렇고, 숙희에게 성기를 잡히잖나.

하정우: 굉장히 굴욕적이었다(웃음). 시나리오에서 처음 그 부분을 보고 너무 끔찍해서 내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웃음). 그러면서도 이 장면을 소화해내고 싶다는 투지가 끓더라. 내 성기에 숙희의 손을 갖다 대는 장면을 연기할 때는 김태리가 민망하지 않도록 의상팀에서 준 아대를 착용했다. 히데코와의 키스신을 촬영할 땐 합이 중요했다. 카메라 동선도 무빙이 많았고. 진땀 흘리며 연기했다. 다행히 김민희가 내게 와인을 잘 넘겨줘서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다.

이모부인 코우즈키의 취미가 매우 특이하다.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했나? 분량이 적었는데 편집된 부분은 없나? 아쉬웠을 것 같은데.

조진웅: 코우즈키의 갈망을 의심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이해했다. 또한 분량에 대해 아쉬운 건 없다. 시나리오 상에도 이만큼만 표현돼 있었다. 또한 제목이 ‘아가씨’잖나. 아가씨의 후견인으로서 응당한 지붙을 맡았을 뿐이다. 칸에서 어떤 기자는 코우즈키 번외편을 보고 싶다더라(웃음). 개인적으로 코우즈키를 위해 참 많은 준비를 했지만 아쉽진 않다.
감독: 편집된 건 별로 없다. 코우즈키는 초반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처럼 등장하다 마지막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해내는 배역이다. 찍어놓고 잘라낸 건 없다.

속고 속이는 관계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점을 가장 많이 고민했나? 거짓말이란 화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감독: <아가씨>는 하나의 사기 행각을 두고 서로 속고 속이는 진실게임이다. 그렇지만 결국 네 사람의 관계가 핵심인 영화이기도 하고. 여기에 사랑과 배신이 껴 있다. 감독의 입장에서 이를 묘사하기 위해 시점쇼트를 자주 사용했다. 이들이 속고 속이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은 시선과 눈동자, 눈동자의 움직임밖에 없다. 시점쇼트의 주체가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가 회피하고 다시 바라보고, 몰래 훔쳐보는 게 유일한 힌트다. 여기에 더해 클로즈업을 충돌시켜 관계를 묘사하려 했다.
하정우: 이런 콘셉트의 영화에서는 시점과 편집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여기에 따른 연기를 하기가 쉽지 않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한대로 연기했다.
김민희: 서로 속고 속이면서 생겨나는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김태리: 어릴 때 난 거짓말쟁이였다. 밥 먹듯이 거짓말을 했다. 잘못을 피하기 위한 면피성이었다. 지금은 고쳤지만(웃음). 영화에서는 직업적으로 거짓말을 하잖나. 처음에는 사기를 쳐서 아가씨의 혼을 빼먹으려 하지만 나중에는 마음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로 넘어간다. 이런 거짓말의 변화를 눈여겨 봐 줬으면 좋겠다.
조진웅: 코우즈키는 자신의 거짓말을 모두 다 합리화하는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지조차 인지하지도 못하는 인물이다.
감독: 코우즈키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체성 자체가 거짓말인 인물이다. 조선인인데도 일본인 행세를 하잖나. 예술, 영화, 그리고 서사는 본질적으로 거짓말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느낀 건 거짓말을 잘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창조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거짓말은 예술, 창조적 행위가 아닐까.

2016년 5월 26일 목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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