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위해 삶을 투자하고 의미를 번다. <작전> 박희순
2009년 2월 13일 금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다음 영화가 또 돈과 관련된 영화다.
<십억>말이지. 내가 믿는 구석이 있다면 그 전에 <우리 집에 왜 왔니>가 개봉해서 <작전>의 이미지를 순화시켜줄 수 있을 거란 점이다.

<십억>도 신인 감독 영화더라. <작전>의 이호재 감독에 이어 계속 신인 감독과 작업하게 됐다.
내가 언제부터 신인 감독 따지는 배우였다고 그런 말씀을. (웃음) 데뷔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신인감독들이 나를 찾아줬고 그 분들의 시나리오에 믿음이 가니까 했던 거지. 내가 조금 풀렸다고 해서 신인 감독하고 안 하는 것도 웃기잖아.

예전 인터뷰를 보니까 송강호 씨가 ‘시나리오보다 감독이 더 중요하다’라고, 그 말의 의미를 알겠다고 했던데.
첫 대본을 받고 감독님을 만나 뵈면 그 분의 인품이나 철학, 생각이라던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이 작품을 썼는지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100% 옳은 건 아니겠지만 일단 그 분이 생각하는 지점이 드러났을 때 판단이 서면 같이 하는 거지.

<작전>을 선택하게 된 뚜렷한 이유를 묻는다면 뭐라고 말할 건가?
일단 주식이란 소재가 국내영화에선 다루지 않았던 거라서 신선했다. 우리나라엔 정치, 경제, 사회를 다룬 시사성 있는 영화가 많이 드물잖아. 소위 감독이라고 불리는, 철학이 있는 분들이 예술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사회 풍자를 비롯해 여러 다양한 시도를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많이 부족하다 느끼던 차였다. 상업영화, 오락영화지만 요즘처럼 경제도 어려운데 주식이란 소재를 가져왔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어 보이더라.
주식 관련 전문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일반인에겐 어려운 용어지만 관객 입장에서 그냥 한 귀로 흘리듯 들어도 상관없게 완성됐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거 같다.
내가 주식을 모르는 입장에서 대본을 이해 못할 정도라면 할 필요가 없겠지. 예술영화도 아니고, 오락영화인데 대중과 소통이 쉽게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 안 했을 거다. 내가 주식을 전혀 모름에도 캐릭터를 따라가다 보니까 이건 해도 괜찮겠다 싶더라. 화투를 몰라도 <타짜>를 재미있게 본 것처럼. 나는 진짜 화투로 숫자 세는 것도 모르는데 (영화에서) 땡이 된다고 하니까 땡인가 보다, 이러면서 봤으니까. <작전>도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주식을 사려고 하는지, 팔려고 하는지, 이것만 알면 대충 맞춰가는 거지.

최근 했던 인터뷰가 인터넷에 많던데 또 조폭 연기를 했다는 질문이 많더라. 그런데 사실 조폭이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닌데 다들 그렇게 묻는 거 보면 조폭이 획일적인 이미지란 생각이 든다. 결국 그런 질문이 본인의 이미지를 신경 쓰게 만들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조금 그렇지. 기자간담회 때도 일부로 조폭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었다. 그런 선입견이 생길까 봐. 조폭이란 어감 자체가 좀 그렇지. 미국은 마피아잖아. 좀 그럴 듯하지만 조폭은 어감도 안 좋고. 예전에 조폭 코미디가 워낙 많이 나왔기 때문에 ‘또 조폭이야’, 이런 선입견이 나부터도 있는데 관객들은 오죽하겠어. 그래서 웬만하면 얘기를 안 하려고 했는데 기자님들이 자꾸 꺼내시니까. 그게 다른 캐릭터란 걸 얘기하기 위해서 참여하는 편이지.

<작전>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악역 캐릭터를 연기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사실 악역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많을 거 같다. 캐릭터도 좀 더 입체적인 경우가 많고.
그런 면이 없진 않다. 다만 지금 하고 있는 것과 다른 걸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저 착하고 사랑 받는 역을 선호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번에 센 걸 했으니까 다음엔 유한걸 해서 나의 정신세계를 바꿔보고 연기적인 마인드도 변화시켜보자 이런 거지, 관객에게 사랑 받고 싶으니까 이런 역을 하자, 이런 건 아닌 거 같다.

악역 이미지로 국한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해본 적은 없나?
한번 이런 걸 하면 다시는 안 시킬 것이다, 라고 생각해서 <가족>을 했는데 그런 역이 더 많이 들어오더라. 그때 내가 잘 참은 거 같다. 돈도 많이 필요했고 힘들었지만 그때 좀 늦게 가더라도 참자고 했던 게 지금으로서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 왜냐면 그때 참고 <러브토크>를 했으니까. <러브토크>의 지석이 너무 답답하고 평범한 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니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역이더라. 그 뒤로 여러 작품을 하면서 배우로서 다양한 층을 지닐 수 있게 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데 우연찮게 센 역할로 흥행이 돼서 저 사람은 센 연기를 하는 친구다, 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건 보는 사람 마음이니 어쩔 수 없지. (웃음) 물론 센 역할이 더 쉽게 각인되는 면도 있고.

황종구는 종종 상황을 유머스럽게 만든다. 진지한 상황을 빗나가게 하는 행위를 한다고 할까. 원래 시나리오 상에서의 캐릭터도 그랬을까?
그렇게 웃기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내가 그런 상황 자체에서 ‘척’을 많이 하는 인물로 설정했기 때문이지. 품위 없는 사람이 품위 있는 척을 하니까 그로 인해 생기는 에피소드가 많을 거라 생각했다. 감독님이 쓰신 대본을 봐도 그렇게 폼 잡고 멋있는 척하는 놈이 ‘이 신발 봐, 이게 얼만지 알아?’ 이런 대사를 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생각했다. 더 좀스럽게 할 수도 있었지만 일단 진짜 멋스러운 여유가 있고 품위 있게 보여야 격은 살리면서 재미있는 코미디가 나올 것 같더라. 다만 우리끼린 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로 NG도 내고 재미있게 찍었지만 관객에게 통할까 싶은 걱정은 계속 있었지
이번에도 나름 센 역할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유머를 삽입한 건 그 세기를 줄여보고자 하는 의도도 포함된 게 아닐까.
캐릭터상 이런 게 가미되면 좋겠다 싶었지. <작전>은 상업영화인만큼 웃음이 있다면 좋을 거라 판단했다. 의도했다기 보단 이게 잘 어우러져 공감대가 형성이 되니까 할 수 있었던 거지. 물론 이 캐릭터 자체가 센 느낌을 주는 장면이 여러 번 있기 때문에 독특한 유머가 가미된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한 부분은 있었다.

본인이 염두를 둔 캐릭터가 감독이 생각했던 캐릭터와 충돌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촬영 들어가고 나서 싸우는 건 이미 늦은 거지. 그땐 감독을 따라가는 게 맞다. 그리고 촬영하기 전에 먼저 컨셉이 섰을 때,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고. 대충 내가 어떤 연기를 했을 때 이 작품이랑 맞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는 이런 지점을 잡고 있는데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도장 찍기 전에 그런 조율을 마치는 편이다. 이번에도 작품 수정고가 몇 편 나왔고 그걸 보면서 감독님한테 믿음이 생겼다. 사실 내 나름대로 연기 컨셉이 잡혀져 있는데 그게 내가 해왔던 그런 류의 연기가 아니라면 나에게도 모험인 셈이다. 이걸 하는 게 맞는지 안 맞는지 계속 되물어 보고 되짚어보고 하는 편이지.

이호재 감독과 조율하는 과정은 순탄했나?
감독님도 내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지만 감독님 스스로도 궁금해하고 두려워하는 지점이 있었을 거다. 처음에 찍기 시작할 때, 내가 품위를 지키려 하고, 톤을 다운시키고, 깔고, 이렇게 가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할 거냐고 묻더라. 나는 아직 보여주지도 않았고 나도 지금 서서히 적립해가고 있는 건데. 그래서 지금 찍은 것까지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니까, “아니, 문제는 아니고요. 이렇게 쭉 가시진 않을 거죠?” 그러시더라. 감독님도 믿음은 있었지만 걱정이 많이 됐던 거지. 그래서 좀 기다려보라고, “나도 터지는 부분이 있고, 그럴 때 뭔가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아니지 않냐.” 그랬지. 그러다가 자동차에서 허리띠 풀러 주는, 그 장면을 4회 차에서 찍었는데 그때 이 톤으로 가면 되겠다, 라는 판단이 나도 섰고, 감독님도 만족하셨고, 그렇게 계속 갔지. 그리고 중반으로 가면서 유머를 조금씩 넣기 시작하니까 이젠 감독님이, “그쪽으로 너무 가는 거 아니에요?” 그러셔서, “감독님이 생각하는 지점을 간 뒤 번외로 내 걸 갑시다.” 제안했다. 그래서 감독님이 오케이 하면, 내 버전을 다시 갔다. 그 때 막 애드립도 넣었지. 현장 편집에서는 애드립이 하나도 안 들어갔다. 그런데 스튜디오 편집에선 내 애드립이 다 들어갔더라. 어느 정도 가다 보니까 여기선 유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조금씩 가미를 한 거였다.

그 연기에 의심이 생긴 적은 없었나. 차라리 경험이 적은 배우는,
그냥 마구 밀어붙이는데.

반대로 경험이 많으면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경험에 비춰서 자기 연기에 대해 종종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초반에 걱정이나 의심을 많이 하게 되지만 처음 생각했던 게 맞는 거라 생각하면서 자신을 추스른다. 내가 그려놓은 상이 있으니까 거기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 돼야지, 이걸 다른 방향으로 틀면 내가 무너지고, 이 작품 자체가 무너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내가 그려본 상에 자신이 있을 때 도장을 찍는다고 얘기했듯이 그걸 다시 되짚고 되찾아가려고 노력한다. 새롭게 노선을 바꿨다가 나도 망치고 작품도 망칠 수 있으니까. 내가 생각했던 거, 내가 적립해놨던 게 맞을 거라고, 다시 자신감을 100% 채운 뒤 설정을 적립하지.
<작전>에서 그런 의심의 지점이 있었나?
초반에 조금 그랬다. 어느 시점부터 현장 편집을 조금씩 확인하는 편인데, 중반 정도 가니까 클라이맥스로 가는 도중에 좀 정적으로 흐르더라. 여기선 뭔가 보여줘서 긴장감을 살려야 될 거 같은데 내가 생각한 컨셉대로 가버리면 다운될 거 같은 거다. 그래서 노선을 바꿨지. 감독님한테, “이쪽은 좀 세게 가야 될 거 같지 않아요? 여기서 분위기를 잡아주지 않으면 너무 정적으로 가기 때문에 뒤에서 손해보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렇게 가게 됐다. 내가 생각한 뼈대는 그대로 가되 조금씩 수정을 가했지.

영화를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로 구분하는 것처럼 연극도 마찬가지다. 목화에서 나와서 대중적인 연극에 몇 편 출연하기도 했는데 그 당시 했던 연기는 분명 목화 시절과 다른 연기였던 거 같다. 좀 더 계산적인 연기랄까. 영화에선 그런 계산적인 연기가 더욱 요구되지 않나.
모든 영화에서 계산적으로 연기한다. 물론 어떤 캐릭터를 만드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인간 박희순이 더 많이 보여지는 영화가 있긴 하다. 일상적인 연기를 할 땐 내가 많이 보여지겠지만 나와 동떨어진 캐릭터를 만들 땐 내가 아닌 부분이 보여지겠지. <나의 친구 그의 아내>나 <러브토크>에서의 평상시 모습은 박희순이 많이 보이는 거 같다. 만약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 출연한다면 정말 인간 박희순이 나오지 않을까. 진짜 술을 먹이신다는데, 내 술버릇도 나오겠지. (웃음) 반대로 캐릭터를 만들고 설정을 붙여서 다른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 예전에 목화 연극을 12년 동안 하다 보니까 답답함과 염증이 생겼지만 같은 공간, 같은 연출, 같은 배우들 사이에 있어서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목화에서 나와서 <록키호러쇼>나 <그리스>, <아트>나 <클로저>를 거친 건 목화와는 다른 연기 톤을 시험해보고 싶어서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화마다 다른 연기 톤을 가지고 나를 더 보여주느냐, 아니면 나와 다른 걸 가미하느냐라는 연기 플랜이 생기는 거지.

캐릭터에 인공적인 느낌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관건이 아닐까 싶다.
그것 자체가 모험일 순 있지. 캐릭터에 지나치게 치중하다 보면 인공적이다, 내지는 과장됐다, 이런 말을 들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그래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만드느냐가 큰 숙제지. 황종구란 역할을 만들면서도 계속 이걸 혹시 받아들이지 못할까, 라는 걱정도 하고 의심하면서 만들어 나갔다. 편하게 보이기 위해서 많은 설정을 하지만 현장에서도 편해지려고 노력하고 끊임없이 이에 대해 공부하는 편이다.

김무열은 요즘 무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배우다. 무대 출신 후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생겼을지 모를 일이다.
일단 기본기가 탄탄하지만 이 친구의 장점은 성실성이다. 준비를 많이 하고 분석 능력이 탁월하더라. 보통 스스로 배역을 준비해올 때 겉모습에 많이 치우쳐서 오히려 진짜 자신의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친구는 정말 많은 준비나 설정을 해왔더라. 촬영장 안에서 자꾸 없어진다. 찾아보면 한쪽에서 연습하고 있더라. 기본기가 탄탄함에도 불구하고 성실성을 갖고 있다는 게 후배지만 믿음직스러웠다.
함께 호흡을 맞추는 씬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의 장점도 있었을 거 같은데.
각자 설정해가는 부분이 있잖아. 나는 이렇게 가게 되면 이 친구 또한 자기대로 해석하지. 연극을 경험했던 친구니까 어떤 설정을 맞춰감에 있어서 열려있는 측면이 있었다. 이 친구와 연습을 많이 했었다. 자동차에 담배 비벼 끄는 씬도 감독님이 설정만 해준 걸 우리끼리 다른 데서 연습해서 완성했다. 그런 재미가 있었지. 내가 이렇게 할 테니까 너 이렇게 해, 이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할건데 넌 어떻게 할래, 이럴 때 남자들끼리라도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거든. 물론 현장 분위기 자체가 워낙 좋기도 했고. 내가 중간에 연극을 한번 보러 갔었다. 워낙 유명하단 소리를 많이 들어서 같이 작업한 친구니까 보러 갔지. 나는 탁구경기를 보는 줄 알았다. 모든 여자관객들이 (고개를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김무열만 쫓아다니는 거야, 김무열만. (웃음) 근데 진짜 그럴 만하더라. 이 친구는 룩(look) 자체도 괜찮고, 연기적인 설정이나 감성이 너무 좋더라. 정말 진심으로 박수를 쳐줬다. 그리고 나중에 농담 삼아 얘기했지. 네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줄 알았으면 내가 배려를 안 했을 텐데. (웃음)

극단 목화에서 12년간 있었으니 오태석 선생님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다. 혹시 본인이 출연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적은 없나?
그런 건 없는데 이번에 상 받았을 때 직접 음성이 왔더라. “너 상받았다며? 축하해! 파이팅!”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지.

목화를 나올 때만 해도 많은 기분을 느꼈을 텐데, 지금 그 당시를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할 것 같다.
진짜 기적 같지. 그 12년 동안 연극 판에 있었으면서 영화 판에 가서 내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싶었으니까. 내가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고, 잘 적응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요즘 내가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게 정말 기적 같다.

<세븐데이즈>가 출세작이 됐다.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한 작품으로 유명세가 생겼다.
그 당시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답변을 한 적 있는데, 나는 꾸준하게 많은 캐릭터를 변신해왔는데 그 때는 신경도 안 쓰더니 대중적으로 흥행이 하나 되니까 그걸로 나를 평가한다는 게 자꾸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도 고마운 건 그 작품 하나로 인해서 내 전작들을 찾아본다는 거지. 재평가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더라.

<작전> 포스터에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난 현상수배범인 줄 알았어. (웃음) 사실 그건 권력들 사이에 있는 개미를 표현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뿐이지. 내가 뭐 잘 나서 그런 건 아니고. 얼굴이 크게 나오지만, 그런 것뿐이지.

하지만 분명 그 포스터엔 이제 박희순이란 배우의 이름과 얼굴이 영화의 홍보에 득이 된다는 계산도 내포된 셈이다.
용하나 민정이는 충분히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영화를 이끌어 갈만한 자격이 있는 친구들이지만 나 같은 경우는 많이 약하기 때문에 책임감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인터뷰도 많이 하고, 심지어 <해피투게더>까지 나가고. (웃음) 나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으니까 홍보를 위해서도 노력하지.

자신의 인지도가 넓어지고 있다는 걸 의식한 적은 없나? 작품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영향력을 느낀다거나.
거기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평양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못한다는 말도 있잖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품이나 캐릭터의 색깔과 다른 걸 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게 더 우선이지, 내가 원톱이냐, 투톱이냐, 전면에 서느냐, 후면에 서느냐, 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부분에 부담을 느끼고 쫓아가다 보면 다치게 되는 모습을 많이 봐왔고, 나 또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다. 내 인생은 수직상승형이 아니라 계단형이다. 그런 걸 일부로 거부하거나 역행할 필요는 없겠지만 쫓아가진 않으려 한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연기에 매진했다. 연기가 자신에게 있어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박희순이란 사람은 재미도 없고, 모험을 즐기지도 않고, 활동적이거나 사회적이지도 못하고,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콤플렉스도 많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작품에 임할 땐 자신할 수 없지만 누구보다도 더 모험을 즐기고, 새로운 걸 추구하고, 스스로 깨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안하고 가만히 집에 있을 때는, 정말 내가 왜 이렇게 재미없게 살지, 나이를 먹으면 변해야 되지 않나, 이런 자책을 하게 되는데 연기하는 동안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유머스러움까지, 많은 변화가 있다. 박희순은 30%밖에 없는 거 같고, 70%를 배우로서 사는 거 같다. 그 70%가 있기 때문에 박희순이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사는데 의미가 생기는 거 같다. 그런데 이 30%는 정말 의미가 없는 거 같다. 내 삶에서 배우가 돼서 연기를 하고 영화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는 70%가 내 인생이고, 내 호흡이며,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이고, 직업인 거 같다.

그런 당신이 어떻게 연기를 하게 한 건가?
그냥 막연하게 시작했지, 뚜렷한 계기는 없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그래서 그럴지도 모르지. 날 보여주는데 익숙하지 않고, 교우관계도 그렇게 활발하지 않았지만 무대에 섰을 때 조명을 받으면 내가 가면을 쓴다고 생각하고 연기할 수 있는 거니까 이 안에서는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도피나 회피이거나 미지의 세계였던 거 같아.

연기라는 것이 어쩌면 삶을 지탱하는 수단이란 말처럼 들린다. 반대로 연기를 하지 않는 순간에는 그만큼 쓸쓸함을 느끼고 있다는 건데.
연애를 안 해서 그런가? (웃음) 연애를 하면 달라질지 모르지. 사실 요즘 유난히 더 그러는 거 같다. 애인도 없이 한참 바쁘게 연기만 하고 살아와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이가 들면서 느껴지는 허전함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런 당신이 연기를 하겠다고 할 때 부모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나?
아이러니한 게 아무런 끼도 보여드린 게 없었는데 어머니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거다. 항상 연극을 하는데 있어서, 너는 잘 될 것이다, 너는 잘되길 빈다, 기도한다, 이런 얘기를 하셨지, 때려 치고 다른 걸 해라,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남들이 그런 얘길 하면, ‘너나 잘해!’ 이런 식이었으니까. (웃음) 그건 참 고마운 일이지.

장가가라는 말씀은 안 하시나.
하지. 그러니까 주위에 여자 있으면 소개 좀 시켜줘! (웃음) 모든 기자들에게 내가 지금 밑밥을 깔아놓고 있다.

나도 궁한 사람이라서. (웃음) 이제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을 것 같은데 어떤가?
못 알아본다. (웃음) 일단 내가 알아보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인기를 얻게 돼서 좋은 건 작품이 다양하게 들어와서 내가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다는 거다. 내가 영화를 10작품 이상 했지만 사회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어. (웃음) 나로선 다행이다. 그런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작품 속의 나와 박희순은 너무 많은 차이가 나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너무 다르니까 대입을 못 시키는 거 같아. 그리고 설사 알아본다 하더라도 내가 장동건도 아닌데 뭐, 별로 신경이나 쓰겠어? (웃음)
배우로서의 이미지 외의 모습들은 잘 드러나지 않은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최근에 <해피투게더>, <놀러와>에 출연했던 것 때문에 약간 걱정된다. 아, 이젠 정말 그런 거 안 하려고. (웃음)

홍보 때문에 예능프로에 출연했나 보다. 어땠나?
죽는 줄 알았지. 진짜 목욕탕에서 찍더라. 그 좁은 데서 카메라 열대 늘어놓고 너 웃겨봐 그러는데 나가고 싶더라. (웃음)

사실 요즘 예능프로들이 좀 공격적이지 않나. 막말도 넘치고. 그래서 어려운 건 없었나.
그렇지. 다만 그냥 자기들끼리 하면 좋겠는데 자꾸 시키니까. 난 좀 내보내줬으면 좋겠는데. (웃음) 질문에 있는 얘기만 물어보면 준비를 해갈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니까. 박명수 씨한테 엄청 혼났지. (웃음)

예능도 그 나름대로의 연기가 필요하다.
‘테이프 갈고 하겠습니다’ 하면서 잠깐 쉬면 힘들어서 늘어져있다가 다시 시작하면 왁자지껄하다. 연기라고 생각하고 하는 거 같더라. 박명수 씨도 녹화 중엔 막 큰소리치더니 다 끝나니까 다가와서, ‘팬입니다.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이러더라.

연기로 치자면 감정에 몰입해서 연기하다가 컷이 된 후 그 감정에서 빠져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말할 수 있겠다. 혹시 연기에 몰입했다가 빠져 나오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편인가?
감정씬이 너무 많아서 힘든 경우가 있다. 사실 지금까지 개봉작 중에선 가장 힘들었던 게 <남극일기>였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일 년 내내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힘든 작품은 <우리 집에 왜 왔니>다. 일단 육체적으로 10키로나 살을 뺐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아내를 잃고 계속 자살을 시도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아픔을 품고 있었다. 그 안에서 또 코믹한 요소도 있다. 연극할 때 어르신들이 하시던 말씀 중에, 비극은 희극처럼 희극은 비극처럼 연기해라, 라는 말이 있다. 코미디가 전반에 흐르고 있는데 그걸 비극처럼 하니까 당사자는 괴롭지. 저예산이다 보니까 24시간 넘게 촬영을 강행하기도 하고, 그 두 달이 지옥 같다고 느낄 정도로 힘들었다.

연기하는 감정에 따라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경우가 있나 보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통닭 먹고 우는 씬 때문에 하루 종일 감정씬을 했었다. 와이프와 재회하고 헤어지는데 눈물이 계속 나더라. 그렇게 눈물을 닦고 또 통닭 먹는 씬을 찍는데 죽겠더라. 답답하고 너무 힘들었지. 그 씬 찍고 나서 커트를 했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그렇게 30분을 대성통곡했다. 내가 그렇게 소리 내서 울어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엉엉대며 울었다. 밤에 다른 씬을 찍어야 되는데 눈이 너무 부어서 얼음찜질하고 몇 시간 있다가 찍을 정도였지.

그렇게 괴로운 경험을 겪게 되면 몰입하는데 있어서 반사적으로 움츠려 들진 않던가?
그렇진 않다. 그런 건 배우로서, 연기에 있어서 그렇게 몰입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지. 그걸 거부하면 연기를 할 수 없다. 연기가 흐르는 데로 배우는 가는 거지.

시장이 좁다 보니 그만큼 선택의 폭도 줄어들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을 거다. 시도가 가능한 장르가 제한된 만큼 배우가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도 제한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쉬움이 많다. 스릴러 하나 잘되니 계속 스릴러가 나오고, 내년엔 <과속스캔들>따라 간다는 얘기도 있고. 다들 천편일률적으로 이때다 싶으면 몰리고, 그런 점에 대한 답답함이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나는 거꾸로 가는 거 같다. 작년에 한참 스릴러를 많이 찍었지만 <작전>이 새로운 시도처럼 보여서 한 거고, 그전에 <우리 집에 왜 왔니>도 나에겐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겠단 판단이었다. 스릴러에 원톱은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세븐데이즈>보다 재미있거나 새로운 게 없더라. 형사역할만 들어오는데 굳이 그런 걸 또 하면서 새로운 걸 찾을 수 있는 노력을 허비할 바에야 정말 새롭고 독특한 걸 해보는 게 낫겠다 생각하던 차에 <우리집에 왜 왔니>가 들어왔고, 이건 내가 보여주지 못한 독특한 색깔이 있기 때문에 저예산이든, 원톱이든, 투톱이든 상관없이 하겠다고 했지. 그건 내 선택의 문제지, 나에 대한 강요는 없으니까. 우리 ‘열음’(소속사)이 나한테 많이 맡겨주는 편이다. (웃음)
혹시 외국영화보면서 자신이 해봤으면 좋겠다 싶은 캐릭터가 있었나?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 뎁이 연기한 잭 스패로우처럼, 그런 역할을 하면 재미있겠다 싶었던 적은 있었지.

할리우드로 가야겠는데. (웃음) 혹시 다시 무대에 설 계획은 없나?
올해 말에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 스케줄 때문에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영화가 계속 들어와서.

뭔가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건가.
아직 구체화된 건 아니고 2년 전부터 생각이 있었는데 영화가 계속 끊이지 않고 들어오니까. 조금 더 미뤘다가 할 수도 있는 거고.

어쩌면 본인의 인지도가 연극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시점일지도 모르겠다.
거창하게 무슨 기여를 한다거나 그런 건 생각이 없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연극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할 수 있었으면 하는 거지. 가수가 공연에서 라이브로 관객과 만나서 신나게 한판 놀 수 있는 것처럼 그런 무대가 그리운 거다.

작년에 <연극열전2>가 꽤나 화제였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시도는 좋고 박수도 쳐줄 수 있다. 다만 영화배우나 탤런트를 무대로 데려와서 예전에 대박난 작품들을 우려먹기처럼 다시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 창작극을 만드는 새로운 시도 안에 그 배우들이 존재한다면 모르겠지만 배우들을 상품화시켜서 좋은 작품에 끼워 맞추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로 연극을 대중화시킨다는 건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거지, 지속적으로 연극을 발전시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완전히 작업이 끝난 건가?
이미 <작전>이전에 끝났다.

개봉이 지연된 셈인데, 사실 이런 경험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그렇고, <바보>도 그렇고, <세븐 데이즈>도 우여곡절이 있었고. 예전에 스스로 곗돈 찾는 기분이라고 말했던 적도 있었던데, (웃음) 배우로서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볼 기회가 미뤄진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나?
지금 했던 작품과 다른 작품을 하고 보여주기 위해서 영화를 선택하는 놈인데 그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지는 사태가 자꾸 발생하고 있다. 그것마저도 운명인 거 같다.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하는 게 운명이듯이 이 작품의 개봉이 엉키는 것도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 <세븐 데이즈>끝나고 작년에 <우리 집에 왜 왔니>와 <작전>을 찍었는데 그게 올해로 넘어왔다. 그래서 원래 작년 1년이 비는 셈이었는데 그 자리에 <바보>와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왔으니까 오히려 다양성 면에서 잘 됐다 싶은 면도 있었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셈이다. 어쨌든 벌써 다음 영화에 캐스팅됐고 꾸준히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기회가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연기 외적으로 짊어지는 부담도 늘어난 바는 없나.
한 작품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 다음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있고, 내 스스로 새로움을 찾기 위한 모험도 있지만 어차피 난 늦었거든. (웃음) 그러니 더 서두르고 말고 할건 없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대로 천천히 가면 된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린다는 건 사치지. 작품하고 있는 것만해도 행복하니까.
2009년 2월 13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2009년 2월 13일 금요일 | 사진: 권영탕 기자(무비스트)

(총 30명 참여)
mckkw
연기파   
2010-10-31 12:21
kkmkyr
노력하느느배우다   
2010-05-10 16:52
kisemo
잘봤어요~~   
2010-04-13 16:04
loop1434
멋진배우   
2010-02-17 10:02
ldk209
도대체 어떻게 혼자서 모든 걸 완벽히 처리할 수 있었을까???   
2009-10-02 14:30
taijilej
박휘순씨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봅니다!   
2009-04-21 21:24
ehgmlrj
너무 멋있는 배우인것 같다..
요즘 빠져있는 배우다..!!   
2009-04-16 00:43
ldk209
민혁이 안 고 울 때.. 정말...   
2009-03-1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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