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을 규정할 수 없는, 묘한 영화 <설국열차> 봉준호 감독
2013년 8월 19일 월요일 | 서정환 기자 이메일

인터뷰 하느라 고생이 많습니다(웃음).
메뚜기도 한철이라고(웃음), 매년 개봉하는 감독도 아니고 3~4년에 한번 하는 거라서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평소 SF영화는 즐겨보나요?
그렇죠. 좋아하는 SF영화는 뭐가 있을까. 존 카펜터의 83년도 <괴물>. 아날로그 특수효과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도 서늘하고 그 결말도 무시무시하죠. 존 카펜터 영화 많이 좋아해요. SF영화도 많이 했잖아요. 취향에 따라 갈리는데, 예를 들면 <에이리언> 중에 몇 편이 제일 좋았냐고 물으면 제임스 카메론의 2편도 많이 꼽지만 저는 리들리 스콧의 1편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최근 개봉한 <프로메테우스>도 좋았던 것 같아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컴퓨터 그래픽 전혀 없이 수공업으로 다 작업한 건데 되게 세련되고 리얼하잖아요. <에이리언> 1편에서 새끼가 가슴 팍 뚫고 나오는 전설적인 장면, 그게 존 허트에요. 존 허트 할아버지랑 촬영하다 밥 먹고 커피 먹을 때 ‘그때 어떻게 한 거예요?’ 물어보면 막 신나서 설명하고(웃음). 레전드 현장에서 직접 연기한 분에게 그런 이야기 듣는 재미도 있었죠.

원작에서 가장 매력을 느낀 부분이 열차였나요, 아니면 설정 그 자체였나요?
설정 자체가 일단 너무 강렬하고 독창적이었죠. 사실 묵시록적 배경의 소설이나 영화는 워낙 많지만 ‘설국열차’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달리는 기차에 타고 있는 거잖아요. 또 칸이 나뉘어서 싸우고 있고 갈등이 있고. 무척이나 독특한,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설정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시각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는데, 독창적인 발상은 그대로 가져오고 시나리오는 재구성해서 다시 쓰면 되는 거니까요. 원작의 구조가 그렇게 영화적인 구조는 아니잖아요. 원작은 남자가 앞쪽으로 호송되면서 많은 인물과 이야기들이 에세이처럼 계속 지나가는 구조라 이야기 자체는 새롭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기본 발상과 세팅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정말 영화화하고 싶었죠.

강렬하고 독창적인 설정에서 느껴졌던 이미지는 어떤 것들이었나요?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체온이나 촉감으로 느껴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영화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거지만, 사실 뭔가 만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잖아요. 화면을 보면서 춥거나 더워지기도 하고요. 원작 만화 또는 이를 기반으로 만들게 되는 영화는 그 느낌이 강렬했어요. 기차 안의 답답한 공기와 꼬리 칸의 구질구질한 촉감 같은 것들. 창밖에는 차갑고 깨끗한, 그렇지만 모든 게 죽어있는 설원이 펼쳐져있는 느낌들. 북유럽의 영화제에 갔는데 11월에 온 도시가 꽁꽁 얼어있고, 길에 사람도 없고 조용한 거예요. 작은 바에 문을 열면 안에 ‘와라와라와라’ 시끄러운 소리와 담배 연기로 꽉 차있는데 스웨덴 사람들이 술을 먹고 있어요. 문을 닫으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고요. 엉뚱하게도 내가 경험했던 그런 안과 밖의 느낌, 촉감들이 만화를 보면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영화 초반에 가장 센, 이완 브렘너의 팔 자르는 신이 되게 무시무시하잖아요. 원작 만화에는 없는 장면이지만 원작 만화에서 느꼈던 그런 분위기를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경계선에 걸쳐있는 거잖아요. 몸뚱이는 안에 있고 팔은 얼어붙을 정도의 새하얀 혹한에 있는, 안과 밖이 완전히 대비되는 느낌. 실제 추위가 살갗에 닿는 느낌. 원작 만화도 비록 지면에 그려져 있지만 그런 분위기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추운 바깥과 쾌쾌한 공기가 꽉 차있을 기차 안.
영화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가 계급투쟁이에요. 그동안 전작들에서 보여준 한국사회의 무의식적 공포, 그 현실적 공포가 환기시켰던 정치적 색이 이번에는 직설적인 이야기로 표현됐을 때 어떤 색으로 드러날 것인가, 그 부분이 <설국열차>에서 가장 궁금하고 기대됐던 부분 중 하나였어요.
어떤 색인가요? 빨간 색인가요? (웃음)

기존에 즐겨 사용하던 상징과 은유, 풍자의 활용이 직설적 이야기에서도 여전히 사용되다보니 오히려 모호해진 느낌이 들기도 하더군요.
사실 눈에 보이잖아요. 기차에 사람들이 타있는데 칸별로 나눠져 있으니까. 그게 시각적으로 빤히 보이고 이분법적으로 나눠있고요. 계층이나 계급을 적당히 은폐하면서 살려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사실 다 드러나죠. 비행기만 타도 이코노믹에 좁게 껴서 가다가 공항에 내릴 때 앞에 퍼스트 클래스나 비즈니스를 지나서 내리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럼 다 보이잖아요. 영자 신문 넓게 펼쳐져있고 ‘얘들은 이러고 왔어?’(웃음) 확 끓어오르는 느낌 있잖아요. 커티스가 앞 칸으로 가는 그 감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SF니까 이런 독특하고 이상한 기차 칸에 의한 설정을 한 것이고, 그 자체가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직설적이고 눈에 고스란히 다 보이는 거죠. 이런 식의 설정 자체가 극단화되어 있고 단순화되어 있는 설정 속에서 찍는 SF영화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것이 또 스토리의 물리적 측면이기도 하고요. 기차의 구조 자체가 스토리의 구조고, 기차 칸을 배열하니까 그게 결국 신의 배열이 되는 거잖아요. 뒤에서 앞으로 가는 거니까요. 처음에 기차를 디자인하고 설계할 때 그 구조 자체가 신 리스트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였어요. 그 단순함과 명쾌함과 스트레이트함이 이 영화의 본질이라고 봤어요. 너무나 쉽게 느낄 수 있는 것들. 대신 정치적인 여러 가지 의미들은 커티스가 전진한다는 조건으로 설정해서 말한 부분이고, 사실 그게 영화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남궁민수가 가지고 있는 다른 레벨의 목표가 있고 그것이 겹쳐지고요. 커티스의 여행만 놓고 보더라고 길리엄에서 출발해서 윌포드에게로 가는 여행, 존 허트에서 에드 해리스로 가는 여정인거잖아요. 그 두 사람 사이에 또 숨겨진 관계의 비밀이 있는 거고요. 그 모든 것들을 엔진 칸에서 하는 대사를 포함해서 종합적으로 엮었을 때만 이 영화의 진짜 정치적인 함의랄까 의미들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설정만 보면 직접적이고 표면적이고 심플하죠. 정작 윌포드를 만나고 나서가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자기가 갇혀있는 시스템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칸을 파괴하고 나가는 이야기인데, 동시에 인간의 다른 측면이 시스템의 유혹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주저앉고 싶잖아요. 달콤한 안락함을 누리고 싶고요. 인간의 두 가지 욕망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윌포드가 공략해 들어가는 거죠. 커티스는 거의 넘어가지 않았나요? 추악한 실체를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그토록 고난의 여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지만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것, 그것이 어떻게 보면 리얼한 인간의 모습인 것 같아요. 뒤로 갈수록 액션보다는 대사의 양이 많아지지만(웃음), 저는 그게 스토리를 또는 정치적 의미를 책임지는 자세라고 생각해서 스토리를 기필코 밀어붙여서 다 감당해내고야 말겠다는 책임감이 있었습니다(웃음).
커티스가 남궁민수에게 이야기하는 꼬리 칸에서 17년 전에 벌어졌던 일들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요?
그런 생각은 누구나 제안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제 취향인 것 같아요. 제 영화마다 그런 신들이 꼭 한번 씩은 있거든요. <플란다스의 개>도 변희봉 선생님이 지하실에서 보일러 김씨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것도 영화 속 또 하나의 이야기잖아요. 보일러 김씨 상황을 화면으로 보여주지는 않잖아요. 인물의 기괴한 얼굴과 손짓, 제스처와 대사로 해내는, 배우에 의지해야하는, 그래서 배우가 잘 해야만 찍을 수 있는 장면인 거죠. <괴물>에서도 변희봉 선생님이 또 그런 걸 하세요. 송강호 선배 머리를 이렇게 하면서 얘가 왜 머리가 이따위가 됐나(웃음), 어렸을 때 밥을 못 먹어가지고(웃음), 그 장면. <마더>에서는 진구씨가 한단 말이죠. 여고생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추리한 걸 얘기할 때 왜 시체를 거기다 걸어놨을까, 밖에 비가 오고 거기서 진구씨가 멋있게 소화하죠. 이번에는 크리스 에반스 차례가 된 거죠. 그래서 사실 처음부터 플래시백을 화면으로 넣을 생각이 없었어요. 미리 크리스랑 얘기를 많이 했어요. 나는 이런 장면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커티스의 진짜 어둠의 핵심이 나오는 장면이라고. 사실 커티스는 가여운 애에요. 몸은 계속 돌파하면서 왔지만 마음이나 정신은 꼬리 칸에 여전히 붙잡혀있는 거거든요. 17년 전의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엉뚱하게 남궁민수에서 털어놓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인데, 커티스 캐릭터에 있어서 핵심적이고 중요한 부분이죠. 배우로서는 되게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크리스도 좋아하더라고요. 이 신만큼은 제대로 찍고 싶다고, 준비도 많이 하겠다고 했고요. 제이미 벨이 고자질한 내용에 의하면, 숙소에서 거울을 보며 크리스가 연습하는 걸 봤다고(일동 폭소). ‘야, 모른 척 해줘. 너는 그런 걸 얘기하고 다니니.’ ‘아! 크리스 졸라 연습해, 감독님. 그 신 찍는 날만 기다리나봐요. 근데 저는 왜 이렇게 일찍 죽어요? (일동폭소) 식물 칸에 넣어주면 되게 재밌는 거 많이 할 수 있는데. 교실 칸에서 애들이랑 하면 나도 애드립 많이 할 수 있는데.’ 순간 흔들렸다가 빨리 가라고 했죠(웃음). 뭔 얘기하려다 이렇게 됐지? 아, 늘 하던 그건데 그걸 크리스 에반스가 하게 된 거죠. 영화 역사에서 보면 그런 신들이 꽤 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전설적인 시퀀스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1975년도 <죠스> 1편을 보면 카리스마 넘치는 상어사냥꾼 로버트 쇼가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죠. 배가 침몰했는데 상어 떼가 와서 선원들이 허리아래가 하나씩 없어지고 온 바다가 피로 물들고, 이걸 다 말로 해요. 그 장면도 아주 무시무시한 전설적인 장면,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입으로 풀어내는 거죠. <죠스>의 그 신도 크리스 에반스와 다시 봤어요. 존 포드 영화중에서도 프로듀서가 전쟁 신을 못 찍게 해서 그랬다고는 하는데 남북전쟁에서 헨리 폰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신이 있어요. 맛이 간 멍한 눈빛으로 전쟁에서 목격한 걸 이야기하는 신이 있어요. 그것도 회상 신이 안 나오고 말로만 나오는데 되게 서늘하고 무시무시하거든요. 그런 레전드급 독백, 연극의 모놀로그와 같은 일종의 독백이잖아요. 배우들은 그런 거에 항상 도전하고픈 욕망이 있나봐요. 변희봉 선생님도 <플란다스의 개> 의상 리허설 할 때 옷 입으면서 보일러 김씨 대사를 하는 거예요. ‘봉감독, 나 이거 준비 다됐어. 이거 언제 찍는 겨? 나 대사 외운 입에서 단내가 날라고 해. 빨리 좀 찍자고.’ (일동 폭소) 아직 크랭크인도 안했고, 그거 찍으려면 몇 달이나 남았는데 맨날 집에서 그걸 연습하셨나봐요. 배우들은 그런 거 참 좋아하나봐요. 정면에서 카메라는 너무나 스트레이트하게 자신을 찍고 있고,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말 그대로 들려주는 거잖아요. 크리스가 그래서 준비를 많이 했어요. 그날 찍을 때 시선이 내려갔다가 잠깐 송강호를 보다가 처음 카니발리즘에 대한 것을 고백할 때의 미세한 동작, 표현을 잘 해냈어요. 할리우드 히어로영화에서 그런 신이 사실 흔하지 않잖아요. 크리스 입장에서도 도전하고 싶었을 것 같아요.

17년 전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길리엄이 풀숏으로 등장하는 순간, 그의 팔다리도 얼려서 처벌 받은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거는 시나리오 쓸 때 의도였어요. 잘려있는 팔의 의미가 이런 건줄 알았는데 끝에 가서 보면 훨씬 더 다른 숭고한 이유였다는 걸 알게 되는 걸로요. 개기다 처벌받은 건 줄 알았는데 커티스의 17년 전 에피소드를 듣고 나면 길리엄의 팔에 대해 다시 보게 되는 거죠. 뒤집어서 생각하면, 통치하는 입장에서도 그 전설을 들었기 때문에 그 전설을 욕보이고 싶었을 것 같아요. 길리엄이 기적 같은, 정말 이타적인 행동을 통해 순식간에 국면을 180도 전환시키고 정신적 지도자로 우뚝 선 거 아니에요. 처벌을 하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그걸 욕보이는 개념으로 응징 내지는 처벌의 상징처럼 보일 수 있게 그런 추측도 해봤어요. 어쨌든 끝에 가면 잘려있는 팔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하나의 레이어, 스토리 라인이 더 있는 건데 그걸 조합하는 재미가 있는 거죠. 근데 생각하기 귀찮아하시는 분들은 좀(웃음).

커티스 시점으로 진행되는 영화로 보다보면 윌포드와 싸워 이기는 걸 기대할 텐데,
무찌르자 윌포드, 승리와 키스! 그렇게 딱 끝나는(웃음).

생각지도 않았던 남궁민수가 후반부에 스멀스멀 기어 나오죠(웃음).
커티스는 처음부터 자기 비전을 만천하에 관객들에게 공개하고 스트레이트하게 치고 나가고, 남궁민수는 약쟁이처럼 옆에서 비실비실하다가 두 개의 비전이 합류하면서 직진방향과 김밥 옆구리가 터지는 측면 방향의 비전이 마침내 충돌하는 거죠. 그동안 영화가 끌고 왔던 힘의 방향을 남궁민수가 구십도 옆으로 돌려버리는, 터닝 포인트가 되는 장면이라 거창한 카메라워크를 썼어요. 완전 발상의 전환이죠. 남궁민수는 오랫동안 계획해왔지만 관객들은 그 순간 목도하게 되는 거니까요. 그 두 가지 서로 다른 비전이 충돌됐다가 잠시 그것이 유보된 채로 엔진 칸으로 들어가는 거죠. 사실 갑자기 남궁민수가 이야기하는 것만은 아니에요. 전부터 티 안 나게 차곡차곡 쌓여 오거든요. 식물 칸에서 흙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스시 먹을 때 남궁민수가 창밖을 보는 별개의 단독 숏이 있어요. 그에게 있어서 창밖은 특히 남다른 의미잖아요. 남궁민수는 자신의 비전이 있기 때문에 밖을 보는 게 차곡차곡 쌓여온 게 있어요. 그러다 만천하에 관객들에게 공개되는 거죠.
남궁민수는 7인의 폭동 당시 맨 앞에 있었던, 그의 부인이라 예상되는 얼어있는 시체를 매년 한 번씩 창밖으로 봤겠죠.
제일 앞에 이누이트족 여자가 요나 엄마라고 가정했을 때? 시나리오 쓸 때 그 상상을 했어요.

얼어있는 시체를 보면서 열차 밖 온도가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했을 테고, 그래서 점점 열차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더군요.
온도차를 느끼는 단서가 많이 있었을 것 같아요. 눈이 줄어들거나 녹으면 사람의 형태가 좀 더 많이 드러나겠죠. 자기 부인이 얼어 죽은 채로 눈사람이 되어 있는데 그걸 안보고 지나갈 일은 없을 테니 그때도 느꼈을 테고, 눈에 박혀 있는 비행기라는 명확한 구조가 있으니까 더 정확하게 체크할 수 있겠죠. 그리고 에스키모들이 눈의 결정체나 눈의 촉감, 성질에 대해 잘 안대요. 별자리도 잘 알고요. 에스키모들이 그런 것을 전수받았다고 치면 남궁민수도 부인에게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총격전 때 난데없이 조용해지면서 눈송이가 남궁민수 눈앞으로 지나가잖아요. 그 장면도 그런 느낌으로 넣은 것이었고요. 그래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 같아요. 대신 밖으로 나가는 문은 얼음벽처럼 되어버린 거잖아요. 밖은 다 얼었으니까. 그래서 자기가 평소 도어 락을 열듯이 할 수 없으니까 문을 부셔야하는데 기차 안에서 폭탄을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마침 크로놀이라는 공업용 인화물질이 마약 대용으로 여기저기 퍼져서 쓰이고 있으니 그걸 몇 년간 수집한 거겠죠. 어떻게 보면 영화의 전제 자체를 허물고 뒤집는 스토리 라인인거죠. 커티스는 열차 뒤쪽에서 앞으로 간다는 걸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외부적으로 그게 영화의 스토리라인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 뒤에서 앞으로 가봤자 결국 다 기차인 거잖아요. 다른 차원에서의 탈출이 필요했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양보다 질이라고 신의 숫자를 떠나서 송강호 선배의 캐릭터가 가지는 중요성이(웃음). 다시 하는 말이지만 커티스가 되게 불쌍해요(웃음). 외롭고 가여운 친구예요. 꼬리 칸에 얽매여 있는 친구고요. 엔진 칸에 도착했는데, 그렇게 앞으로 가겠다는 일념하나로 살아왔는데 더 갈 데가 없잖아요. 엔진 코어에 들어갔을 때, 그 찬스를 놓치지 않고 윌포드가 유혹의 마수를 뻗고 처음으로 크리스가 기차 뒤를 보거든요. 되게 의미심장한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길리엄은 혀를 잘라버리라고 하잖아요. 그의 말을 들으면 안 된다고. 그건 두 가지 의미인 것 같아요. 윌포드에 유혹당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자기와 윌포드의 비밀이 또 있잖아요. 그게 드러나는 것이 싫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뒤를 보는 건 결국 커티스가 윌포드의 입장이 되는 거죠. 체제에 흡수되는 거고 시스템에 흡수되는 거고. 윌포드의 시선으로 기차를 보는 거죠. 꼬리 칸 쪽을 보는. 커티스는 참 가여운 사람이에요.

열차안과 밖의 온도차를 표현하는데 있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초반부는 모든 것이 얼어붙은 빙하기를 전제로 팔을 얼리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사실 그때도 기후 변화는 진행된 상태거든요. 그러다 총격전에서는 유리에 구멍이 뚫리는데 그 구멍으로 체감되는 외부 공기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지는 않았어요. 변화된 기후에 대한 이야기가 직설적으로 나오기 전에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로 바깥 온도에 대한 표현을 배분하려고 했나요?
사실 페이크가 있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팔을 얼렸는데 끝에는 애들이 나가서 서바이벌 하는 것으로 묘사되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대사에 고도를 넣었어요. 일본인 장교가 지도를 보며 이야기하잖아요. 고도와 지역에 따라 온도차이도 있을 것이고요. 총격전에서는 군인이 급한 마음에 조잡하게 구멍을 막으려고 하는 묘사가 있어요. 사운드를 보면 외부의 찬 공기가 유입되고 있으니 경고를 하는, 차단을 하고 보수를 해야 한다는 안내 방송 같은 게 있어요. 배경으로 깔리는 사운드라 자막을 넣기가 애매해서 넣지 않았는데 외국인들은 캐치가 됐을 거예요. 남궁민수가 확고한 비전을 말하기 전까지 관객들이 사실 당연히 모르기를 바랐어요. 일종의 반전이니까. 최소한의 개연성만 갖추려고 했던 것 같아요. 소심한 안전장치 같은(웃음).
전작들에서 장르 속으로 들어가 패턴을 뒤집고 배신했던 시도가 오히려 한국 장르의 리얼리티를 확보한 경우들이 있었어요. 이번에는 글로벌 프로젝트고 미국시장을 노리는 프로젝트다보니 장르 컨벤션으로 들어가 충실하게 작업을 한 것으로 보여요. SF라는 장르를 어떻게 해석하고 풀려했나요?
이 영화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원작에 꽂혀서 원작으로부터 만들어낸 스토리를 가지고 정신없이 달려와서 영화를 완성시킨 건데, 되게 묘한 영화인 것 같아요. 장르의 패턴을 이상하게 배신하면서 장르를 가지고 유희를 하는 영화라고 보기에는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또 이런 비슷한 설정의 기차 안에서 하는 SF영화가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그렇진 않거든요. 기본적 설정이나 세팅이 무척 독특한 것 같아요. 묵시록 배경은 많지만 이렇게 기차 안에 공간과 인물을 펼쳐놓은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요. 반면 기차라는 세팅에 의한 유니크한 독특함이 있다면 제가 한 이야기는 그 속에 담아놓은, 인간들의 관계라든가 인간과 시스템의 관계는 원형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아버지로부터 나쁜 아버지로의 여행 같은 거잖아요. 비밀이 있고. 아들이 이쪽에서 저쪽 축으로 이동하는, 그것이 거대한 삼각형 또는 거대한 원을 그리는 구조인거죠. 일직선을 휘어서 끝을 붙이면 원이 되잖아요. 에드 해리스 대사에서도 앞쪽 칸과 맨 뒤는 협조하게 되어있다고 나오는데, 그게 딱 붙어서 무시무시한 원이 되어버리면 앞도 뒤도 없는, 앞과 뒤가 의미가 없어지는 하나의 기차라는 시스템이 되어버리니까요. 윌포드 로고에도 원이 있고, 엔진 코어도 원의 이미지가 핵심이에요. 영원함을 상징하기도 하고 빠져나갈 수 없는 시스템의 느낌도 있다고 생각해요. 기차 자체도 순환구조로 돌고 있지만요. 이야기 자체는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묵직한 고전적 구조, 원형적 구조를 갖고 있는 이카루스의 얘기와도 비슷한 것 같아요. 태양을 향해 너무 가까이 날아가면 녹아서 떨어지듯이 커티스도 너무 많이 앞으로 간 거죠. 물론 다른 방식으로 자기를 구원하죠. 마침내 자르지 못했던 팔을 아이를 위해서 바치면서 스스로의 개인적 구원은 그나마 하지만, 전체 목표를 놓고 봤을 때는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루스처럼 엔진을 향해 가는 거죠. 불나방과 같이. 거듭 말씀드리지만 커티스는 참 불쌍한 친구에요(웃음). 장르를 가지고 유희를 하진 않았지만 이야기 구조 자체나 원작의 세팅 자체는 독특하다고 생각하고 싶네요. 영화를 다시 봐야겠네요. 내가 찍었는데 여전히 호기심이 생기네(웃음).

그런 요소들 때문에 <설국열차>를 재밌다, 재미없다로 단순히 나누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기묘해요. 평들도 이상한 스탠스가 다들 있고요. 저도 설명하다보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고요(웃음).

봉준호 감독의 이전 색과는 그래서 많이 다른 것 같고요.
당연히 다르죠. 다르고 싶고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홍상수 감독님처럼 자기 세계를 완전히 구축하고 그 안에서 깊고 다양한 변주를 하는 분들이 있고, 저는 덩어리 자체를 새롭게 바꾸는 과정인 것 같아요. 물론 제 작품들에서도 공통점을 엮어내고 찾아내면 있겠지만, 다른 면들도 있었잖아요. 그래서 <설국열차>도 비슷한 과정이라 생각하는데, 단지 외국 배우들이 나오고 영어 대사가 나오고 한글 자막이 나오니까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체감 온도의 차이, 스토리를 분석하고 인물을 분석하기 이전에 표면적 차이는 전보다 더 클 것 같아요.

봉준호의 숙명이라 생각해요. 작가의 색을 공고히 하면서도 동시에 흥행에서도 대중과 충분히 소통해온 유일한 감독이기 때문에 봉준호의 영화는 이를 기본 전제로 깔고 영화를 해석하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거겠죠.
즐거운 십자가죠. 그런 기대를 받는다는 게 사실 십자가이면서도 좋은 일이죠. 어떤 기대도 받지 못하고 영화를 개봉시켰을 때, 그때의 썰렁함과 외로움을 겪어봤기에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웃음).

2013년 8월 19일 월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사진_박경섭(studio ZIP)

(총 5명 참여)
jkkimjun47
봉준호감독만의 색깔이 있어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입니다. 꼭들 보세요   
2013-09-03 20:51
shoneylee
설국열차 정말 실망이죠~ 세계적인 감독으로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인정받으려고 발버둥치다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입니다.   
2013-09-03 08:38
shoneylee
재미도 규정할 수 없는 묘한 영화! 그리고 봉감독도 설국열차 때문에 재능을 규정할 수 없는 묘한 감독이 되어버림.ㅡㅡ;;   
2013-08-23 11:03
winyou3187
봉준호감독의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것 같습니다. 분명 흥행작인데 말들이 참 많터라구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 작품이긴 하지만 나름 재미있게 봤습니다. 저 또한 아직까진 봉준호감독의 세계를 그리 잘 이해 못하고 받아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좋게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고 영화를 보는 안목을 키우는데 아직 좀 어렵네요   
2013-08-19 16:04
cconzy
의도는 잘 이해했지만, 어떤 이에겐 단순하고 친절한 영화가 좋다고 보네요. ,<설국열차> 관객에게게 설명하려 하고, 풀어서 보라는 식의 불친절한 면이 많습니다. 게다가 헐리웃 영화일까요? 한국영화일까?   
2013-08-1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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