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하고 애잔하게 그려내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김윤석
2016년 12월 14일 수요일 | 김수진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김수진]
배우 김윤석 하면 현실감 있는 연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런 그가 달달한 분위기에 허구성 가득한 타임슬립 로맨스물에 도전했다. 안팎으로 걱정스러운 시선이 쏟아지고 동시에 새로운 모습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그런 가운데 김윤석은 자신의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말도 안되는 시간 여행이 그의 진정성 있는 연기 덕분에 그럴 법하게 다가왔고 이쯤 되면 영화가 가진 틀이나 편견들은 그에겐 더 이상 장애가 아닌 듯하다. 김윤석은 실로 과장되지 않고 애잔하게 캐릭터에 녹아 드는 데 성공하며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중심축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본 인터뷰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완성된 작품을 보니 기분이 어떤가.
기술 시사회에서 미리 봤다. 음향이 더 안 좋았던 걸로 기억 나는데, 아무튼 스태프들과 함께 봤다. 보통 기술 시사를 할 땐 각자 분야만 신경 쓰며 본다. 감정 이입이 잘 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는 소리가 나더라. 매우 만족스러웠다.

주변 반응은.
지금까지 찍은 영화 중 평점이 가장 높더라. <완득이>보다 더 높다.

출연 계기가 궁금하다.
일단 원작을 읽어 보지 못했다. 시나리오만 본 상태에서 좋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타임슬립 멜로 장르는 스토리가 황당무계하고 짜임새 있기가 힘들다. 그런데 기욤 뮈소의 작품이 바탕이라서 그런지 서사가 굉장히 탄탄했다. 기승전결이 잘 맞아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멜로 라인이 많은 변요한과는 반대로, 내가 연기한 ‘수현’은 중년 남성으로서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는 역할이라 더 연기해보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기대한 게 있다면.
변요한과의 만남이 가장 기대됐다. 30년 전 ‘나’를 만나는 것 아니냐. 두 명의 ‘수현’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설득력 있고 흥미로웠다. 내가 실제 주인공이라도 30년 전 여리고 결단력 없는 내 모습을 보면 짜증날 것 같다.(웃음)

인상 깊게 본 타임슬립물이 있다면.
가장 재미있게 본 타임슬립물은 <백투더퓨처>다. 최근엔 <어바웃타임>도 인상깊었다. 특히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책만 읽는 그 모습이 와 닿았다. 돈 때문에 불행을 자초한 증조할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과욕을 차리지 않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타임슬립은 특성상 관객을 설득시켜야 한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힘든 부분이 많았을텐데
다행히도 홍지영 감독님이 타임슬립의 SF적인 요소를 최소화 시키고 서사에 더 중점을 뒀다.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차분히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흐름 속에서 나오는 절제감이 특히 마음에 들었는데, 표현하기도 비교적 수월했던 것 같다.

얼마 전 개봉된 <가려진 시간>도 그렇고 한국 관객들이 판타지에 대해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누가 됐건 일단 우리 영화를 30분만 보면 타임슬립물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이야기가 중심이다. 기교적인 요소를 빼고 담백하게 그려냈기 때문에, 황당한 장면이나 이야기가 없다. 많은 관객들이 이질감 없이 영화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을 굳이 말하자면, 캐릭터를 그려내는 내 표현방식들이다. 관객들의 공감을 부를 수 있을까 싶다. 극중 ‘수현’이 자신의 딸에게 암에 걸린 사실을 고백하는 모습이 짠한 장면 중 하나인데, 어떻게 그려낼지 고민스러웠다. 결국 덤덤하게 연기했지만, 이런 부분이 자칫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할까 염려된다.

아버지, 연인 역할을 모두 소화했다.
아버지 역할은 우선 실제 두 딸이 있어서 부담 없었다. 화면에 보여지는 것도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 사랑했던 연인을 다시 봤을 때 드는 감정을 연기하는 건 더 쉬웠다. 왜냐하면 내 나이대의 사람들 누구나 가질 법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헤어졌던 연인을 본 순간, 덤덤한 척하지만 어떤 선을 넘어서면 눈물이 나고, 그런 감정들은 매우 보편적이라 오히려 연기하기 쉽다.

딸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어떤 아버지인가.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하지 않는 아버지다.(웃음)

변요한을 직접 추천했다는 말이 있다.
<미생>에서 보여준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 또 나와 눈매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아 내 젊은 시절을 연기하기에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둘 사이 호흡은 어땠는가.
상당히 좋았다. 변요한이 한예종 출신에 연극을 했던 친구라서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 대담하게 자신을 던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또 어느 정도 계산 안에서 연기를 한 뒤 나머지는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부분도 나와 비슷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촬영하는 내내 호흡이 잘 맞았다.
같은 캐릭터라는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변요한과 맞춘 부분이 있나.
변요한이 머리 넘기는 습관이 있다. 그걸 따라하려고 했다. 내 스타일이 아닌데 따라하려니 어렵긴 하더라. 사실 애를 많이 쓴 건 변요한이다. 촬영 현장에서 항상 날 관찰하고 있더라. 그러나 비슷하게 보이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30년이라는 세월이 있으니 어쩌면 다른 모습을 보여줘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크게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연출을 맡은 홍지영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홍지영 감독은 키는 작지만 거인이나 다름없다. 언제나 주도면밀하게 현장을 지휘한다. 또 차분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기욤 뮈소의 소설을 직접 각색했는데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막힘이 없었다. 항상 조용조용하게 리액션을 주는 데 얄미울 정도다.

태국 캄보디아 오지에서 촬영한 첫 장면이 인상깊다.
그 장면이 멋있어 보여도, 실제 촬영할 땐 헬기 소리 때문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헬기 조종사가 그토록 소리치며 과장된 연기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캄보디아에서 시간여행 약을 건넨 노인 역의 배우도 인상깊더라.
사실 그분은 태국 배우다. 캄보디아어로 대화를 해야 하는 데 할 줄 몰라서 종이에 대사를 적어 보면서 연기했다. 무엇보다도 그분 비주얼 자체가 굉장히 개성 넘쳐서 그 신에선 난 묻히겠다 싶었다. 눈동자도 렌즈를 낀 것처럼 독특하지 않냐. 아마 조만간 한국에 진출할 것 같다.(웃음)

해외 촬영을 할 당시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전체 스태프들이 말라리아 예방 약을 하루 한 알씩 먹었다. 내게 캄보디아 어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있었는데, 한번은 그분이 약을 안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내 약을 줬다. 사실 말라리아 약이 굉장히 독하다. 과다 복용하면 정신이 몽롱해진다. 그럼에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원작자인 기욤 뮈소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배우라고 했다.
그분이 아는 한국 배우가 나밖에 없다. <추격자>에서 날 처음 봤다더라. 일부러 날 추천한 건 아니고, 캐스팅 관련 정보를 주고 받고 하다가 우연히 날 발견했다고 들었다. ‘김윤석이 <추격자>에 나온 그 사람이냐’며 꽤 반가워 했다고 한다.

기욤 뮈소가 영화화를 찬성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 것 같은가.
영화화를 허락한 이유 중 90%이상은 각색한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사실 소설보다 영화가 더 감성을 자극하는 이유 중 하나는 OST 때문이다. 사용된 음악 모두 명곡인데.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특히 쓰인 음악 중 김현식 씨의 노래를 좋아한다. 완전 팬이었다. 심지어 신촌블루스 콘서트도 보러 갔었다. 이후 간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땐 정말 가슴 아팠던 기억이 난다.

만약 영화처럼 3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재미 없을 것 같다. 30년 전이면 고등학생인데, 수업이 10시에 끝나고 그랬다. 아…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본인이 생각할 때,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딸이나 부인,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하자. 그리고 담배는 반드시 끊자.(웃음)
영화를 기대하는 예비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말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다. 블록버스터 급의 영화는 아니지만 이런 어수선한 정국에서 작게나마 위로를 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지금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를 촬영 중이다. 아마 내년 2월 달까지 정신 없을 것 같다. 강원도에 가서 계속 살다시피 해야 한다.

차기작도 기대해보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딸이 그림을 잘 그리는데 최근 인상적인 그림 하나를 그렸다. 돌인데, 학교 미술선생님도 깜짝 놀랐다더라. 돌 몇 개가 서로 붙어 있는 그림이다. 난 그 모습이 마치 하나의 가족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감명받아 딸 아이 그림을 휴대폰으로 찍어 간직하고 있다. 나도 어릴 때 그림을 그렸는데 날 닮아 소질이 있는건지 모르겠다. 대부분 자식 때문에 행복한 일이 많다.

2016년 12월 14일 수요일 | 글_김수진 기자(sooj610@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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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김재윤 실장(Z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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