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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불가,'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이영순 칼럼 from USA | 2004년 2월 16일 월요일 | 이영순 이메일

밥 해리스(빌 머레이)는 할리우드 액션영화 배우로 도쿄로 위스키광고를 찍기 위해 날라온다. 그는 25년 된 결혼생활을 진행 중이고 아내와의 대화란 카펫 색깔을 고르냐, 마냐이듯 심심하다. 밥이 만날 여자인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바쁜 사진작가인 남편 쟌(지오바니 리비시)을 따라 도쿄에 온 결혼 2년차의 미모에 백수인 여자다.

밥과 샬롯은 미국에서 일본으로 날라오면서 이미 잃어버렸던 것과 잃어버린 공통점이 많다. 같은 도쿄의 호텔에 머물고, 교감을 나눠야할 배우자의 관계가 단절되어 외롭고, 언어를 잃어버리고, 시차적응까지 힘들어한다. 결국 잠을 못 이루고 호텔 바에서 만난다. 이미 공통점이 많은 이들의 만남은 감정이 물처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른다.

의도적인 설정이지만 액션영화의 배우인 밥은 배우가 맞나싶을 만큼 무료한 캐릭터이고,살롯을 보자면 철학공부를 하긴 한건지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저리도 없을까 싶다. 그녀에게 낯선 환경과 문화는 오로지 두렵고 불편하다. 그러나 낯선 것은 새롭기에 흥분과 설레임을 줄 수 있다. 그녀에게 오십대의 배우인 밥이 주었던 감정들처럼 말이다. 바로 영화니까. 또 현실에서도 사건이란 늘 일상을 벗어난 변수에서 터지니까 가능한 작위적인 면들이다.

사랑영화의 매력은 어느 순간 어떻게 만나냐는 첫 대면의 순간과 밀고 당기다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밥과 샬롯은 바에서 만나기 전 이미 갇혀진 엘리베이터 안에서 스치듯 만난다. 둘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를 보고 ‘하이’대신 해맑게 웃고, 그는 그녀가 던지고 간 일상적인 미소를 멍하니 뒤쫓는다. 왜 웃었을까. 나한테 웃은 거겠지. 미친년인가 아무나 보고 웃게.

미국인들은 타인을 보면 습관적으로 ‘하이’하고 웃기도 한다. 그런데 ‘하이’가 생략된 일상적인 미소는 밥의 기억에 남는다. 찰칵 사진처럼 사람의 뇌는 무언가 강렬한 인상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자동 기억이 된다고 한다. 이런 섬세한 장면들이 주는 잔잔한 여운들이 영화 곳곳에 묻어나고 소피아 코플라감독의 뛰어난 연출능력이다. 감독의 데뷔작인 <처녀 자살소동(virgin suicide)>에서도 그녀의 오밀조밀한 능력은 빛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과연 사랑을 다룬 영화인가. 진하게 혹할 만한 정사장면이 없는 건 원래 상을 탄 소위 예술영화니깐 그렇다고 봐야 되나? 어쩌면 각인이 없다면 둘의 만남은 정사가 없더라도 일주일짜리 로맨스에 불과하고 아버지와 딸의 관계나 친구인 사이를 다룬 영화로 남을 수도 있지 않는가.

영화를 보고나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란 희얀한 번역 때문에 소쉬르도 떠올랐지만 하루키의 처녀작인<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인 소설이 문득 떠올랐다. 번역이 괴상한 건 영화는 단지 사랑의 단절을 보여주기보단 미국에서 도쿄로 이동(Translation)하면서 이미 잃어버린 배우자와의 관계, 사회적인 문화, 객체로의 자리를 보여주는 포괄적인 제목이였기 때문이다. 번역된 제목은 원제보다 멋지기도 하지만 때로 상업적인 의도가 강조되면 원제가 담은 영화의 함축된 주제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루키의 소설은 이렇다.
주인공 나는 손가락이 하나 없는 레코드점에서 일하는 여자를 술집에서 만난다. 연애사건에필수적인 건 역시 술. 공교롭게 둘은 하루 밤을 영화처럼 보내지만 아무 일도 없고, 관계에 대한 설명도 보이는 것도 없다. 그럼에도 주인공 남자인 나는 뛰어나지 않은 그녀를 기억하고 헤어진 후에도 그녀를 추억한다. 이유는 그는 그녀를 보면서 무언가 과거에 잃어버렸던 것들을 그녀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 밥과 샬 롯은 서로를 통해 그 잃어버린 공통점을 갖는다. 그래서 만나고 소낙비마냥 몸에 자연스레 젖어드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읽어나가고 나누게 된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묻는다면 사랑 자체는 통역이 필요 없다. 언어도 필요 없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눈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지 않던가.

둘은 바에서의 만남후 일탈처럼 샬롯의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밥도 먹으며 친해진다. 꽤나 심심해보이지만 아름다운 장면들이 눈에 띤다. 일탈처럼 가라오케에서 놀다가 들어온 그들은 눈꺼풀이 내려앉아 잠들 때까지 이런저런 수다를 떤다. 그러다 옆에서 따로 잠에 빠밥은 살며시 잠든 그녀의 발가락을 딱 한번 쓰다듬는다. 그 장면은 한 번의 섹스보다 근사하다.

밥은 그녀의 몸보다는 그녀의 일상과 고민을 담은 대화 속에서 그녀의 인생을 알고 싶어 하고 따듯한 충고와 격려를 해준다. 소유하고 싶더라도 그 것이 상대를 해하는 것이라면 욕망을 참는 밥의 진실함이 담긴 장면은 아름답다.

또한 샤브샤브를 먹는 식당장면은 ‘사랑은 연인들의 말할 수 없는 소여로 남는다.'란 벤베누토의 말처럼 말로도 표현될 수 없는 섬세하고 복잡한 심정들이 녹아진 장면이다. 샬롯은 밥이 호텔 바의 여가수와 완나잇을 한 것을 알아버렸다. 그녀의 마음처럼 펄펄 끊던 전골그릇만을 노려보는 샬롯을 보며 밥은 그녀의 마음을 읽는다. 그리고 메뉴판에다 신경질을 부리는 그녀대신 간단히 메뉴를 골라주곤 음료수를 맥주로 바꿔시킨다.

이렇게 영화는 담백하고 간결하게 보여줄 수없고 설명할 수 없는 연인들의 복잡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펼쳐준다. 하지만 서로를 알고 사랑하더라도 한계가 있는 만남의 끝은 이별이다. 이들의 이별은 슬프다. 그녀는 오드리 헵번마냥 까치발을 들고, 그는 뜨거운 눈물을 머금은 그녀를 꼭 안고 뜨거운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서로는 마저 가야 될 길로 떠난다.

잃어버린 것을 서로를 통해 찾았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영화는 로맨스가 아닌 사랑을 담았지만 코미디영화로 분류된 게 아닐까. 구지 구색을 맞추자면 코미디 중에 로맨스코미디로 말이다.

감독의 데뷔작인 <처녀자살소동>에서의 적절하게 감정의 선을 살려주는 음악처럼 영화에는 주제와 주인공들의 감정을 들려주는 4인조 영국그룹인 지져스앤 메리 체인(MaryChain)의 < just like honey >이 흐른다. 이 노래는 부끄러워서 발바닥만 쳐다보고 연주한다는 슈게이징 음악으로 메마른 보이스와 인위적 소음인 파열음이 일부러 섞여진 장르다. 노래는 밥이 가라오케에서 불렀던 록시 뮤직의 < More than this >와 함께 잃어버린 것에 대한 공허와 단절을 들려준다. 그리고 간간이 들리는 노래 속의 달콤함은 밥과 샬롯이 나눈 사랑을 노래한다.

의외의 배우들이 섞여져서 잘 조화를 이룬 영화다. 밥의 역할을 한 빌 머레이는 과거 미국의 토요일 밤의 쇼로 유명해진 코미디 배우로 우리에게는 <투시(Tootsie)>로 각인된 배우다. 그는 무성영화 시절 대 코미디언이던 부스터 키튼이다. 키튼이 그랬듯 천연덕스럽게 웃기고, 영화 속에서 그의 매력은 연륜과함께 따듯한 미소를 준다.

샬롯의 연기를 한 스칼렛 요한슨은 십대의 뛰어난 미모 배우지만 혹시 영화 속에서 샬롯이 임신을 했던 걸까 그래서 정사가 없었던가? 궁금하게 만들었다. 출렁이는 뱃살이 설마 그녀의 천연 뱃살이라면 황당할 것 같다.

영화에서 제일 눈에 뜬건 그녀의 남편인 지오바니이다. 시트콤 프렌즈에서 연상인 중년여인과 결혼을 하겠다고 열광하던 모습과 뭐든 다 태워버리는 골통기질이 멋졌지만 역시 그의 매력은 확 구겨버린 종이같은 얼굴과 웅얼거리는 목소리이다.

어릴 때 보던 주말의 명화극장에서 틀어주는 <남과 녀>를 다시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음악은 왜 그리 내 귀를 반갑게 하던지. 사랑은 통역자체가 불가능하고 통역하려들고 규정하려는 것 자체가 닭짓이다. 화성에서 밥을 먹을지 모를 세상에 아직도 해석이 불가능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건 근사하다. 그리고 그 걸 담은 영화를 본다는 것은 기쁘다.

3 )
apfl529
좋은 글 감사~   
2009-09-21 18:30
qsay11tem
통역되면 좋을텐데   
2007-11-27 13:16
kpop20
사랑도 통역이 된다면...   
2007-05-1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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