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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그 뜨거운 현장을 관통하다... 변호인
ldk209 2013-12-12 오후 3:03:00 11996   [1]

 

80년대, 그 뜨거운 현장을 관통하다... ★★★★

 

송우석(송강호)은 상고 출신으로 고시에 합격, 판사로 잠시 재직하다 법복을 벗고 부산에서 변호사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학연도, 돈도, 든든한 배경도 없는 그는 부동산 등기나 세금 자문 등 다른 변호사들은 손대지 않는 분야에 진출, 돈 잘 버는 변호사로서 명성을 얻는다. 힘들었던 시절, 국밥 값을 떼먹고 도망갔던 식당 아들 진우(임시완)가 부동령사건에 연루,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되자, 진우의 엄마(김영애)는 송우석을 찾아와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그저 구치소 접견만 도와주려던 그는 진우의 몸에 난 끔찍한 상처를 보고 진우의 변호인이 되기로 한다.

 

잘 알려져 있다 시피 영화 <변호인>은 고 전 노무현 대통령의 한 때를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이다. 노무현이란 사람의 일생을 쭉 펼쳤을 때 어느 순간이 가장 드라마틱했을까? 많은 순간들이 있었겠지만, 분명 <변호인>에서 다루고 있는 1981년 부림사건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순간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저 돈 잘 버는 세무 전문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의 탈바꿈은 이후 국회의원 등을 거치며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그의 인생 후반부를 시작하는 첫 단추였기 때문이다.

 

80년대를 ‘누구나 투사가 될 수밖에 없던 시절’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투사가 된다는 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70년대 유신을 거쳐 80년 광주민중을 학살하고 집권한 전두환 독재정권의 엄혹한 탄압의 시대에 정권과 맞선다는 건 말 그대로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대부분 고문에 의한 조작사건임이 드러나고 있는 시국사건들로 80년대는 매일 같이 신문 1면이나 사회면이 시커멓게 도배되고는 했는데, 서울의 학림사건에 뒤이어 81년 9월 부산지역의 부림사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변호인>은 한국의 80년대란 배경과 노무현이란 이름을 지우고 보면 상당히 무난한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도 뻔하다. 돈 밖에 모르는 속물이 우연히 어떤 사건에 휘말려 사회의 불의와 부당한 국가권력에 저항하게 된다는 얘기는 여러 영화를 통해 꽤 익숙한 패턴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전형적이고 뻔한 이야기라고 일축해 버리는 게 과연 당연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인다. 왜냐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주인공이 처하게 되는 그런 상황에 사실 주저하거나 회피하는 게 대부분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비록 익숙한 전개이긴 하지만, 거기에 한국의 80년대라는 배경과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개입되는 순간, 영화는 전혀 다른 빛과 온도를 내기 시작한다. 당연하게도 그 빛과 온도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개인적 감정에 따라, 또는 호오에 따라 큰 차이를 내기야 하겠지만 말이다.

 

영화는 큰 무리가 없다. 충분히 재미도 있고, 유머도 좋고, 또 후반부 법정씬은 지금 한국의 현실과 오버랩되면서 울분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주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영화는 욕심이 없거나 오히려 많다. 다분히 평이한 연출과 식상한 음악의 사용이라는 지점에선 영화적 욕심을 부려봤으면 싶은 아쉬움이 남는 반면, 후반부로 갈수록 전체의 상황보다 특정 개인에 대한 집중으로만 흐른 것은 좀 자제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대우조선 이석규 노동자가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노동자와 유족들을 돕기 위해 이상수, 노무현 변호사 등이 거제 대우조선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정부는 노무현 변호사를 소위 ‘제3자 개입금지’ 등의 혐의로 구속한다.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당시 노무현의 변호를 위해 부산 변호사회 소속 대부분의 변호사가 공동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고, 구속적부심사 당일 재판관이 변호인의 출석 여부를 확인하느라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흠. 이 장면을 엔딩으로 잡은 이유가 충분히 이해되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87년이라는 자막이 뜨는 순간 전혀 다른 식의 결말을 예상했더랬다. 고무줄도 계속 잡아당기면 어느 순간 툭하고 끊어진다. 아무리 강하고 탄력이 좋은 철이라도 계속 강도를 높여 휘면 어느 순간 뚝 부러진다. 87년 민중들의 폭발적 저항은 박종철의 고문 치사 및 은폐, 전두환의 호헌 선언으로 촉발되긴 했지만, 수 년 간의 축적된 탄압이 그 사건을 계기로 강하게 튕겨져 나온 것이다. 민중들은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결코 일어서지 않는다. 난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개인의 성장이라는 차원을 넘어 전체적인 조망의 결말로 막을 내릴 것이라고 순간 생각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다. 송강호는 그저 대단하다는 말 외에 특별히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의 대단한(!) 연기를 보여준다. 김영애, 오달수, 그리고 영화는 처음이라는 임시완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 모두가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연기로서 영화의 격을 높여준다. 그리고 곽도원. 이렇게까지 적개심이 끓어오를 정도로 나쁜 놈을 보는 게 과연 얼마만인지. 그저 오금이 저릴 정도다.

 

※ 영화에서 그리는 시기부터 국회의원을 하던 정치인 노무현은 지지하고 좋아했었다. 그런 지지를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거둬들였다.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에 대해선 지지를 거둬들인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강하게 반대했고 비판했다. 그의 마지막은 안타깝긴 했지만 거의 최악의 선택이었다. 어쨌거나 살아남았어야 했다. 정치적으로는 그랬고, 인간적으로는 여전히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 난 정치인에게 소위 ‘빠’가 되는 것보단 ‘까’가 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대게 특정 정치인의 몰락은 ‘빠’들이 추동하는 경우가 많다.

 

※ 이 영화에 출연한 이후 캐스팅이 끊겼다는 송강호의 인터뷰 내용이 화제에 올랐는데, 다분히 농담으로 한 얘기(인터뷰어의 전언)를 마치 정치적 압력이 있다는 식으로 확대 해석하는 건 한국 영화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 시사회장에 온 관객의 거의 90%가 여성이다. 대체 뭔일인가 싶었는데, 그 중 상당한 수가 임시완의 팬이었나 보다. 임시완이 스크린에 등장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조금 웅성거리는 소리가. 그러더니 나올 때 “곽도원이 옆에 있었으면 패주고 싶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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