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 <작전> 개봉차! 간단하게 들여다봤다. '한국형 스릴러 연대기'
2009년 2월 13일 금요일 | 유지이 기자 이메일


오랜만에 퇴근길 사람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으고 있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극한의 막장에 이른 이야기가 연일 시청자 게시판을 달구고 있지만, 동시에 대단한 인기를 모으고 있기도 하다. 이걸 '막장 드라마'라는 한국형 드라마 장르의 완숙으로 보아도 좋을 듯 하다. 극단적인 소재를 엉성한 플롯에 엮어놓아도 이야기를 즐기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이미 익숙한 부속으로 관객의 뇌리에 남아있는 것이 '장르'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다른 드라마라면 족히 한 두 회를 잡아먹을 전개 몇 개를 한 회 분에서 소화하는 〈아내의 유혹〉의 속도는 이런 판단에 결정적 근거를 마련한다. 수많은 장르가 완숙기에 이르렀을 때 그러했기 때문이다. 장르 완숙기에 나타난 작품은 세세하게 주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미 장르 팬들은 피부 속에 체화되어 보기만 해도 뒷 이야기를 자신이 만들어 즐긴다.

현해탄에 펼쳐놓은 마약밀매 느와르

문화권이 다른 곳에 장르물을 그대로 이식할 때 무척 어색한 결과물이 탄생하는 이유도 같다. 해당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장르적 경험은 문화적 바탕과 역사가 없이는 즐길 수가 없다. 스릴러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영화팬이 탁월한 반전과 감각적인 전개에 홀딱 반해 한국에서도 〈식스센스〉〈오션스 일레븐〉〈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같은 작품이 나오길 바랬지만 성급한 결과물은 언제나 좋지 않았다. 제 아무리 재능있는 감독이나 배우라도 하루 아침에 문화적 배경을 홀로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오랜 오컬트 장르 영화가 앞 서 있었기 때문에 〈식스센스〉에서 유령을 보는 아이를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받아들였고, 수십년 간 케이퍼 물이 장르 공식을 다듬어 놨기 때문에 전성기 케이퍼 물을 조금 손 봐 거의 그대로 만든 〈오션스 일레븐〉이나 현대적인 감각으로 변주한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가 가능했다. 촘촘히 쌓인 세월은 빼어난 개인보다 위대하다.

잘 빠진 영화 〈마린보이〉를 보면, 한국에도 본격적인 장르 스릴러가 나올 수 있는 세월이 쌓인 모양이다. 도박 빚에 마약조직의 상품을 현해탄을 건너 가져와야하는 속칭 〈마린보이〉를 소재로 삼은 영화는 말끔하게 음모를 이야기 속에 밀어넣는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 영화의 틀은 완전히 헐리웃 전성 시절 필름 느와르와 같다. 저 〈까이에 뒤 씨네마〉의 젊은이들이 경배해 마지않고, 전성시절 홍콩 액션물마저 그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홍콩 느와르'같은 짝퉁류 장르명을 달아야 했던 그 시절 그 장르. 당대의 스타일리스트 브라이언 드 팔마가 〈팜므파탈〉에서 장르에 대한 오마주를 바친 바로 그 고전. 험프리 보가트의 깊은 얼굴과 로렌 바콜의 대리석같은 얼굴이 흑백필름을 채우던 그 시절 영화말이다. 21세기 초입에 나온 한국영화 〈마린보이〉가 20세기 중반 헐리웃 영화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어쩌다 큰 범죄에 연루되는 남자, 가진 것도 대단한 경력도 없지만 한 두가지 재능이 그를 어쩔 수 없는 음모로 이끈다. 음모의 뒤에는 거물 범죄자가 있다. 모든 음모의 배후를 쥐고 있는 남자 〈말타의 매〉의 거트먼, 〈차이나타운〉의 노아 크로스에 해당하는 인물은 〈마린보이〉에서 조재현이 맡은 강사장이다. 당연하게도 모든 필름 느와르가 그런 것처럼 거물과 주인공 사이를 이어주는 여인이 있다. 때로는 가해자같기도 하고 때로 피해자로 보이기도 하는 필름 느와르의 꽃, 〈키 라르고〉의 노라 템플(로렌 바콜) 〈카사블랑카〉의 일사 룬드(잉그리드 버그먼) 〈L.A. 컨피덴셜〉의 린 브레켄(킴 베이싱어)에 해당하는 〈마린보이〉의 팜므파탈은 유리(박시연)다. 영화는 보기좋게 주인공과 악당 사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을 놓고, 솜씨좋게 필름 느와르를 엮어간다. 몸매 좋은 남녀 주인공이 바다를 지나 운반하는 마약과 엮인다는 이야기가 비슷한 헐리웃 영화 〈블루스톰〉이 몸매는 더 좋은 영화일지 모르지만, 만듦새는 오히려 한국 〈마린보이〉가 더 좋다.

증권가를 배경으로 하는 도박판

비슷한 시기에 영화관에 걸리는 또 다른 한국영화 〈작전〉 역시 장르 스릴러다. 그러나 필름 느와르를 현대 한국으로 옮겨온 〈마린보이〉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변종 케이퍼 물에 가깝다. 어쩌다 악당들의 음모 한복판에 끼게 된 남자가 흉악한 악당과 마주하고 이 사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가 끼는 구조는 같지만, 분위기에 모든 것을 거는 필름 느와르와는 다르게 〈작전〉은 사기 도박판을 무대로 펼쳐지는 사기 생존기다. 무대를 작전이 횡행하는 증권가로 옮겨놨지만, 도박이나 보험이나 선물 시장이나 돈을 확률에 건다는 점에서 다를 게 무어랴. 음모꾼들이 넘실거리고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음모를 꾸미지만 예측할 수 없는 수법에 서로 부딛치며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점에서 〈작전〉은 이 부류의 원조 〈스팅〉을 21세기 식으로 물려받은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아모레스 페로스〉같은 영화의 연장선 상에 있다. 바로 다른 한 쪽에서는 더 경쾌하고 명쾌하게 범죄극을 다루어 지금도 그 형식 그대로 리메이크되곤 하는 〈오션스 일레븐〉〈이탈리안 잡〉같은 형태로 발전한 바로 그 장르.

전문 도박꾼 손에 호되게 당한 후 오히려 자신이 그 전문 도박꾼이 되기로 작정한 남자. 전문 도박꾼이 된 시점에 악당이 낀 큰 판에 엮인다는 구성, 그 사이에 끼어드는 능력있는 여자. 익숙한 설정? 그렇다. 작전 투성이 증권가를 속임수 넘치는 화투판으로 옮기면 정확히 〈타짜〉가 된다. 원작만화 〈타짜〉는 헐리웃 장르물을 차용한 작품이 아니었다. 대본소 만화 전성기인 1980년대부터 한국의 현실을 정교하게 굴곡있는 이야기로 풀어냈던 허영만 화백과 김세영 작가 콤비의 신작이었다. 무려 20년간 장르적 이야기의 원형을 한국적으로 다듬은 역사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이미 〈범죄의 재구성〉으로 장르 케이퍼 물을 한국영화에 성공적으로 도입한 감독의 손에서 〈타짜〉는 좀 더 장르 영화적인 이야기 구성을 가지게 된다. 이를 이어받았다면 〈작전〉이 성공적인 한국 장르 스릴러로 빠진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만개한 한국형 장르 스릴러

한국 영화에 케이퍼 장르를 시도한 적이 없었나? 아니다. 이미 〈자카르타〉같은 영화가 시도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으니 처음은 아니다. 한국 영화에 필름 느와르를 시도한 작품이 없었나? 아니다. 당장 몇 년 전만 돌려봐도 대놓고 필름 느와르를 차용한 〈달콤한 인생〉이 있었다. 그러나 〈자카르타〉는 〈범죄의 재구성〉처럼 한국이라는 공간이 느껴지는 작품은 아니었다. 좋은 배우들이 연기를 했지만 맛깔스러운 대사나 이야기 전개에서 한국이라는 배경에 덜 밀착해 있었다. 아직은 헐리웃 장르 영화를 충무로에 도입한 정도에 가까웠다. 필름 느와르인 〈달콤한 인생〉은? 김지운 감독의 다른 작품이 그런 것처럼 〈달콤한 인생〉 역시 한국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작품이었다. 장르물의 껍질을 가져오되 독특한 대중성을 지닌 김지운 식 작가영화라는 점에서 〈달콤한 인생〉은 〈장화, 홍련〉처럼 한국적 장르의 완성 단계로 보기 힘든 영화다. 역시 자기 영화 만의 성격이 분명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도 스타일 강한 작가의 스릴러였다.

그러나 그런 시도 사이에 독특한 영역을 차지한 〈살인의 추억〉같은 영화가 나왔다. 전형적인 장르 스릴러도, 전통적인 한국 수사물이라고 볼 수 없는 이 독창적인 영화는 자신의 역사가 분명한 컨벤션의 틈바구니에서 교묘하게 자신만의 위치를 잡아냈다. 계속해서 한국영화로 소화한 스릴러를 시도했던 김성홍 감독의 2001년 작품 〈세이 예스〉는 당대의 스타 박중훈을 기용해 연쇄살인 사이코 스릴러를 시도했지만, 한국 사회에 정확하게 밀착한 결과물은 2008년에야 〈추적자〉라는 제목으로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보기 좋게 뽑아낸 〈마린보이〉와 〈작전〉의 성과가 한국 장르 스릴러의 안착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다.

이미 완숙을 넘어서 휴지기에 들어간 한국식 '조폭 코미디'나 언젠가 다시 부활할 시기를 꿈꾸며 관객의 뇌리에서 숨는 길을 택한 '최루성 신파 멜로'에 이어 '한국식 스릴러'가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각본을 쓴 신인감독의 두 작품이 그 기대를 밝게 한다.

2009년 2월 13일 금요일 | 글_유지이 기자(무비스트)

(총 20명 참여)
eunsung718
잘 읽고가요   
2010-09-08 14:17
kisemo
잘봤어요~~   
2010-04-13 16:05
bjmaximus
한국형 스릴러 중에 <텔 미 썽딩><혈의 누><세븐 데이즈>도 빼놓으면 섭섭하지   
2009-05-23 16:21
pink1770017
둘다 잼있나요?   
2009-03-02 22:25
kwyok11
큰 흥행은 둘다 아니죠??   
2009-02-24 20:10
wldud7123
작전 이 더 재미있더라구요.. 주식이라 이해는 안가지만..   
2009-02-19 22:54
hhhh824
달콤한인생.. 나 군대시절에 본 영화인데.. 그때 마지막 총소리에대해 참 말들 많았던걸로 기억..   
2009-02-18 09:22
taijilej
작전이 더 재밌었어요   
2009-02-17 17:49
1 | 2 | 3

 

1 | 2 | 3 | 4 | 5 | 6 | 7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