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한 편의 문학에 가까운 사랑 이야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lowwing 2009-03-16 오전 1:04:17 1276   [0]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전쟁 없던 시절 미국의 이야기.


 

 

 

 

 

 

 

 

 

 

 

 

 

 

 위독한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는 캐롤라인은 어머니의 병세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그녀를 떠나보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자신의 친구는 떠나는 어머니를 보지 못했지만, 자신은 꼭 떠나가는 어머니를 지키겠다며, 죽음에 대하여 묻는다. “죽음이 두려우세요?” 그러자 어머니 데이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냐. 단지 죽음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할 뿐이야.” 그런데, 문득 데이지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1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18년 경 거대한 역이 지어졌고, 자신의 아버지(Our Father : 영화상에서는 분명 my father이 아닌 our father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은 나의 아버지란 표현보다는 성서적으로 하느님을 뜻하며, 때론 부모 세대를 통칭하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여기서는 ‘자신의 아버지’와 ‘부모 세대’를 동시에 포괄하는 중의적인 표현으로 보인다.)는 개관식에 참여하였고, 그 역에는 남부에서 가장 유능한 시계공이 만든 어마어마한 시계가 달릴 예정이었다. 그 시계공은 선천적으로 눈이 멀었으나 훌륭한 시계공이 되었고,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여 슬하에 장성한 아들도 두고 있었다. 눈 먼 시계공(왜 하필 눈 먼 시계공일까? 이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자세히 다루어 보도록 하자.)은 시계를 만드는 와중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야 하는 아들을 떠나 보내야했던 그는 결국 아들을 싸늘한 주검으로 다시 만나야만 했다. 그 후, 눈 먼 시계공은 시계를 만드는데 만 집중하였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도 참석한 개관식에서 마침내 시계를 완성시키고 공개한다. 그런대 시계는 거꾸로 돌아갔다. 눈먼 시계공은 고의적으로 시계를 그렇게 만들었노라 고백한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전쟁에서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계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루즈벨트를 비롯한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화를 내기는커녕 깊은 애도를 표하며, 그 시계에 대한 깊은 뜻을 마음속에 잘 간직하였다.


 이렇게 유별난 오프닝 시퀀스가 끝난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좀 특이하다. 벤자민 버튼과 데이지의 사랑 이야기로 채워진 플래시백과 임종 직전의 데이지와 그녀의 딸 캐롤라인의 현재 시제의 대화 씬 이렇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 이 영화에서 어떻게 봐도 굉장히 뜬금없이 삽입된 이 시퀀스는 두 시간 사십분이라는 긴긴 상영시간 동안 내내 잊혀 지다가 결국 맨 마지막 다시 등장하게 된다. 거꾸로 가는 시계는 결국 2002년 겨울, 대형 디지털시계로 교체 되고, 2003년 거꾸로 인생을 살아야했던 벤자민 버튼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거꾸로 가는 시계가 만들어진 날 벤자민 버튼이 태어났다는 점 빼고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거꾸로 가는 시계에 관련된 이야기는 원작에서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게다가 이 거꾸로 가는 시계로 인하여 벤자민 버튼의 생애는 원작과 무려 58년이나 다른 시대 배경을 가지게 되었다.(1860년이나 1918년이나 어차피 지금으로 보면 똑같은 옛날이기 때문에 현대적인 배경으로 이해를 돕기 위한 이유는 말이 안 된다.) 여기서 확실히 주목해야 할 것은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는 각기 사건의 연도와 (심지어 계절까지도 명시한다.) 눈먼 시계공이 저 시계를 만든 이유일 것이다. 눈먼 시계공은 전쟁 중에 죽은 아들이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를 만들었다. 그것은 곧 한 번 일으키면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이란 참상을 주지시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시간을 거꾸로 돌려도 한 번 죽은 그의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수없이 많은 젊은이의 부모들에게 당면한다. 1918년, 즉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는 그 시점에 이 시계는 작동하기 시작한다. 바로 미국이 이라크전(戰) 이전 가장 마지막으로 전쟁에 자의적으로 참여했던 시점이다. 그렇다면, 시계가 역에서 사라진 시점인 2002년 겨울은 무엇으로 유추 할 수 있을까? 바로 미국 의회가 이라크 군사 작전을 승인했던 바로 그 시점이다.(2002년 10월 미국 의회는 이라크 군사작전을 승인하였다.) 이 역의 입면부가 미국의 국회의사당을 빼다 박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2003년 벤자민 버튼이 죽는 순간 부시는 1917년 미국이 독일에 선전 포고했던 시점에서 94년이 지나 또 다시 선전 포고를 하기에 이른다.(2003년 3월20일 이라크-미국 실지 전쟁이 발발한다.) 바로 미국이 다시 자의적인 의지로 전쟁을 하기 시작한 순간 벤자민 버튼은 죽음에 이른다. 그리고 다시 맨 처음 벤자민 버튼의 나레이션으로 돌아가 보면, 벤자민 버튼은 일기장 첫 장에서 자신은 태어나기 좋은 날인 1차 세계 대전 종전일 태어났다고 얘기하고 있다. 결국 벤자민 버튼의 생애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전쟁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 평온의 시기를 살아간 인물인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많은 이들이 다소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분명 1차 세계 대전과 이라크전 사이에 무수히 많은 전쟁에 참여한 역사가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수없이 많은 전쟁에 휘말려 왔었다. 필자 역시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자의적인 참여의지가 없었다. 즉, 미국은 선전포고에 의해 자의적인 전쟁 참여의지를 들어냈던 최근의 기록은 1917년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가 2003년 이라크에 대한 선전 포고 시기 이전의 가장 마지막 기록이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동의하지 못할 부분은 많다. 베트남전, 걸프전 그 수많은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미국에게 단지 선전포고의 문제만으로는 자의적인 의지의 문제를 판단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선전포고에 의한 전쟁만큼은 확실히 전쟁에 대한 능동적 의지가 없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현재 미국에 대한 정치적 맥락으로 읽어서는 곤란하다.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환상 문학이며,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 영화이다. 그러나 특별히 첨부한 이 장면에 대한 의미를 읽어주는 것이 적어도 감독에 대한 씨네필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최소한의 정치적 색깔에 얼마든지 동의한다. 자 그럼 이 영화에 대해 진짜 얘기를 시작해보자.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상당 부분에 나레이션 방식이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핀쳐의 전작인 <조디악>에서 이어지는 특성이기도 하다. <조디악>때도 지적했지만, 핀쳐는 서사 형식에서 <조디악> 이전과 이후의 영화에서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다. <에어리언 3>, <세븐>, <파이트 클럽>, <패닉룸>에 이르기까지 그는 극적(영상 언어적)인 내러티브에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었다. 그런대, <조디악>, <벤자민 버튼>에 이르러서는 기존의 극적 내러티브에서 상당 부분의 수정이 있었다. 서사에서 있어서 중요한 것은 결국 인과, 시간, 공간이 어떻게 맞물리느냐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전의 할리우드 영화들의 서사(내러티브)는 원인과 결과가 얼마나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느냐의 문제였다.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상황이 있을 수 있을 만 큼 설득력 있게 제시 되었을 때, 관객들은 흥분하게 된다. 또 거기에서 더 나아가 우리는 영화 완전히 후반부에 이르러서 이야기를 완전히 역전시켜 관객에게 큰 충격을 주는 방식에 깊이 중독되어 버리고 만다. 그것이 바로 반전이다. 이것이 우리가 중독된 지금 할리우드의 서사이다. 이것이 지속되면서 우리는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추론하기 시작한다. 원인 없는 결과에 굉장히 혼란스러워하고, 결과 맺지 않는 원인들이 어떻게 진행 될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어 극의 흐름을 방해한다. 주어진 스토리 정보에서 완벽한 이야기 구조를 관객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영화는 최대한의 인과 관계를 맞추어 놓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순서를 배치하고 결정하면서, 관객들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것이 할리우드가 만들어 온 또 영화라는 역사가 가진 이야기 세계였다. 그런대 할리우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할리우드의 탑 클래스로 분류되는 감독군들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에서의 인관관계를 고의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우주 전쟁>에서 도대체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괴 생명체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로 공격을 멈춘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우리는 영화가 끝나도 도대체 그 괴 생명체가 어디서 오고, 왜 우리를 공격하며, 그것이 왜 공격을 멈추었는지 알 수 없는 채 영화 관람을 끝낸다. 기존의 영화 이야기가 주었던 이야기의 구조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적당한 시초다. 그 이후,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다니엘 플레인뷰’, 그리고 크리스토포 놀란의 <다크나이트>에서의 ‘조커’까지 극에서 모든 인관 관계가 무너진 체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캐릭터들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또한 이런 인과 관계의 모든 맥락을 끊어버리며 극을 진행시키는 나이트 샤말란의 <해프닝>은 이야기 자체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결국 일련의 이 모든 탑 클래스급 감독들이 만든 영화들은 그 원인을 불분명하게 함으로서 주어지는 결과 자체를 더 공포스럽게 묘사한다. 할리우드에서는 인과 관계의 붕괴는 이제 하나의 트랜드가 된 걸까? 이 영화는 아예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영화에서 벤자민 버튼의 특이한 인생살이에 대하여 주변 인물들은 너무나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이상해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성령의 힘으로 아들이 점점 젊어진다고 믿는다고 하지만, 데이지마저도 그런 벤자민 버튼의 삶을 당연시 하고 그를 끝까지 보살핀다. 결국 중요 사건에서 고의적으로 직접적인 원인 정보를 누락시킴으로서 기존 서사 방식의 심각한 결점을 만들지만, 영화는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것은 강력한 인과 관계의 서사 형식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버린 관객과 이를 벗어나 또 다른 서사 방식의 물꼬를 틀어내려는 할리우드 감독들과의 팽팽한 심리 싸움에서 영화 내적 장치로 거둔 감독의 승리이다. 불분명한 원인에 의한 사건의 진행에 자연스럽게 동조하는 방식은 비교적 영화적 문법보다는 문학적 서사에 가깝다. 영화가 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지는 강점이 현실성. 즉, 리얼리티이기 때문에 인과 관계는 영화가 피치 못하게 짊어지고 가야할 가혹한 족쇄이다. 그러나 상업성의 자장 안에서 움직였던 할리우드의 영화들은 많은 관객들을 자극시키기 위해여 인과라는 형식을 강박적으로 사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학이라고 해서 이런 인과론적 이야기 구성에 취약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교적 문학은 영화에 비해 표현할 수 있는 상상의 세계가 넓다. 문학은 보여 지지 않고 상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인을 기술해야 하는 수고보다는 사건에 대한 묘사에 힘을 쏟을 수 있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최종적으로 낸 결론은 데이빗 핀쳐가 영상 언어로 훌륭한 문학을 써내려갔다는 점이다. 통상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어진 인과적 관계에 의한 극적 내러티브는 영화 곳곳에서 변증법적으로 부정되어지고 있다. 특히 데이지가 교통사고가 나던 일을 벤자민의 나레이션으로 회상 기술하는 장면은 얼마나 많은 원인들이 겹치고 벌어져야지만, 하나의 우연한 결과가 도출되어지는 보여준다. 결국에 영화에서 많이 쓰인 절대적인 원인에 의한 사건의 기가 막힌 진행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소영이 씨네21에서 지적했다시피 이런 장면은 영화적인 구성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핀쳐는 이 장면을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 넣었다기보다 기존의 영화적 구성을 부정하기 위해 넣었다. 영화적 내러티브가 즐겨 쓰고 있는 절대적인 인과 관계는 이야기적 장치일 뿐이다. 꼭 그것이 그렇게 맞아 떨어져야 할 필요는 없다. 영화에서 관객을 흥분시켰던 중요한 원인들이 결국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건은 어떤 원인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엄청난 우연과 우연(우연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과에 의하여 만들어진 반증이지만......)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 데이빗 핀쳐는 이런 영화적 인과 관계의 강박에서 벗어나 문학적인 서사 방식을 채택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장르는 영화적 장르라기보다는 문학적인 장르인 환상 문학에 가깝다. 이 영화는 현실이라는 환경을 전제하고 벌어지는 환상이다. 인과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아주 자연스러운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지만, 배경은 엄격히 현실에서 적용시키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벌어진 마술 같은 일을 보여주는 장르는 환상 문학에 매우 가깝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원작자인 F.스콧 피츠제럴드보다 환상 문학의 대가인 마르케스를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환상 문학이 절정으로 치닫는 곳은 호텔에서 벌어진 엘리자베스(틸다 스윈트 역)와의 이상한 로맨스 장면이다. 호텔에서 벤자민과 엘리자베스가 만나는 동안 공간은 완전히 다른 장소가 되어버린다. 그 두을 제외하고는 호텔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게 변하며, 관객의 상상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이 영화는 영화보다 문학에 가깝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영화가 이런 식의 인과 관계를 부정함으로서 영화에서 벗어났다고 말하진 않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적어도 현재 그 어떤 영화보다 문학적인 서사 방식에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 조디악에서는 영화를 책으로 그대로 카피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매체는 달라졌지만 정작 컨텐츠는 그대로였던 조디악에 비해, 벤자민 버튼은 아예 새로운 형식의 문학을 창조해냈다. 핀처의 변증법은 성공이다.



*<눈 먼 시계공>


눈먼 시계공은 인류 진화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자신의 이론을 표현하기 위해 제시한 단어이다. 그는 창조론에 대항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창조론이 현대에 와서 이토록 정밀하고 복잡한 생물 체계는 어떤 위대한 설계자(시계공으로 은유)에 의하여 설계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론으로 그 방향을 수정하고 있을 때, 리차드 도킨스는 "자연선택은 눈먼 시계공이다. 눈이 멀었다고 말하는 것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절차를 계획하지 않고 목적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선택의 결과인 생물은 마치 숙련된 시계공이 있어서 그가 설계하고 고안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 책의 목적은 이 역설의 비밀을 푸는 것"(눈먼 시계공, 51쪽)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비평에서 핵심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인과론의 붕괴는 눈먼 시계공에 의한 이야기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는 어떤 절대적인 원인을 가지지 못한다.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가는 것이 바로 이야기 아닐까? 더 이상 이야기의 인과론적 강박에서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눈먼 시계공의 등장은 그래서 더욱 눈이 간다.


(총 0명 참여)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6-26 16:52
powerkwd
기회되면 볼께용~   
2009-05-27 23:27
sdwsds
정말 괜찮은 영화   
2009-03-16 09:55
1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제작사 : Warner Bros., Paramount Pictures / 배급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수입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 공식홈페이지 : http://www.benjamin200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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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시간
  • 166 분
  • 개봉
  • 2009-02-12
  • 재개봉
  •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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