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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아가 아닌, 평범한 영화팬이본 "장화홍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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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홍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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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은 튜브와함께, 한국적정서에 의존하여 생존해나가던 조폭.코믹 주류의 한국영화계의 안이함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진 영화였다. 하지만,호러와 액션에대한 전통적 서투름때문인지 역시 아쉬움을 많이남긴영화이기도 했다.
이는 관객의 감정에 호소함에는 능숙하지만 치밀한구성과 편집이 뒷받침되어야하는 논리적 설득력에는 아직미흡한 한국영화의 단점이 아직 치유되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영화는 영화한편으로 모든것을 말해줄수있어야함에도, 사전의 어떤정보나 사후의 영화뒷얘기를 통해서야 그이해도의 완성이 가능해진다면 이는 뭔가 부족한영화가 되는것이다.
영화는 대중문화임을 전제로한다. 매니아들의 해석과 평가는 그들만의 준비된지식의 결과물일뿐 결코 영화자체에대한 부족함을 메워줄 올바른 대안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하간, 장화홍련은 한국영화고무적측면에서 점수를 주고싶은 영화임에는 분명한것 같다. 다음을통해 장화홍련중 아쉬웠던 부분과 영화속의 의문점들을 한번 짚어보고 이야기를 마치려한다.
1. 영화속 첫번째반전의 포맷
식스센스,디아더스류의 반전은 이미 많은 관객들에게 노출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같은포맷을 취해야만 했을까? 아쉬운부분이다. 수미의아버지가 수연의죽음을 관객에게 알리지않아도 영화끝부분에서 보여줬던 저수지가에서의 수미와수연중 수연의 그림자가 없는 부분, 물속의 발은 수미것밖에 없는 부분, 아버지의 시선은 항상 수미쪽에만 고정되었었던 부분등을 강조하여 보여줬어도 충분했을듯 싶다.
2. 진정한공포
관객이 느끼는 진정한공포심은 귀신의현출,피,비명 따위가아닌, 일상적 현실과의 유사함에서 온다. 즉, 내주변에서 흔히 목격될수있는 장면이 영화속 장면에서 유의미적으로 다가올때 공포심이 발동하게되고 이는 영화관을 나온후에도 지속될수있는것이다. 예를들어 장화홍련전반부에 등장하는산발하고 피흘리는 엄마귀신모습보다는 진흙을잔뜩뒤집어쓰고 꾸물거리는 동생귀신모습이 더무서운것과 같다. 그러나, 장화홍련에서는 어김없이 피,비명,산발귀신이 등장한다. 전설의고향식의 전통적공포영화에서 아직도 자유롭지못한 한국식공포영화의 잔재가 아쉽다. 3. 삽입된 장면들의 동기와 설명 즉,편집의 아쉬움
장화홍련에서 가장 비판받을수있는 부분일것 같다. 게시판에서 이미 영화속 갖가지 장면들에대한 해석과 추론은 이미 충분히 논의되어있는것 같다. 어떻게 느끼고 해석하던지 그것은 관객의 몫이다. 대중문화인 영화의 대상은 영화에대한 건전한 상식을가진 일반인이지,영화관에 억지로 밀어넣은 영화에 문외한인 사람도 영화매니아나 전문가도 아닌것이다. 영화에서 보고 느낀대로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많은 부분 감독이나 작가의 의도대로 관객이 느낀다면 영화의 전달이나 완성도가 높은것이요, 영화뒷얘기나 짜맞추기가 보충되어져야 한다면 그만큼 부족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4. 끝으로 논란중의 각장면들중 종합적인 설명을 보충해본다.
ㄱ. 귀신의 모습? - 귀신의형태로 나타나는 죽은이들의 모습은 죄의식을 느끼는 자들이 보는 환영이다. 나쁜 죄의식의 대상에게는 추하거나 무서운 모습으로, 선한 죄의식의 대상에는 생전의 모습그대로 보인다. 혹자는 장농속의 환영은 모두 친엄마인것처럼 말하는데, 내가보기엔 진흙을 뒤집어쓴것처럼 나타나는 모습은 모두 수연인것 같다. 나타나는 모습에도 원칙이 지켜져야 멋데로의 영화가 아닌것이다. 따라서,마지막 새엄마에게 덤비는 진흙같은 환영의 모습은 수연이라고 본다. 이미 고백했지않은가? 잊고싶어도 자꾸 따라다니는것이 있다고... 새엄마에게의 원한도 수연이가 클것이고 ...
ㄴ. 수미의 인격? - 수미는 새엄마,수연의 인격을 모두 갖추고 있고, 그들의 인격을 갖고있을때 수연은 환영으로도 나타난다. 대표적인예가 식당에서 마주친 새엄마인격발현중의 수미와 마주친 녹색옷을 입은 수연의 얼굴없는 모습.
ㄷ. 근친상간? - 영화속에서 이에대한 단정은 어렵다. 다만, 수미가 친엄마의 주부로서의 역할을 오래하다보니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왜곡되어 발현되고 있는것만은 틀림없다. 그래서, 동생을 간접적으로 죽인 새엄마를 증오하기도하지만, 아버지의 여자역할의 새엄마를 동경하기도 하고(화장하고 침대에 누움), 일렉트라 컴플렉스와 최소한의 윤리의식 사이에서 갈등하기도하고(자고있는 아버지의 뺨을 어루만지다 새엄마로서의 자아와 충돌함, 방에들어가도되겠냐는 아버지에게 안된다고 외침), 새엄마인격중의 수미는 수연이가 친엄마를 갈수록 닮아간다고 질투하기도한다. 결국 이러한 것들이 친엄마에대한 죄의식이되어 엄마의 흉칙한 환영이 영화 초반부에 수미앞에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모든것들이 과연 근친의 부적절한 관계가 존재했는가에대한 확실한 단정을 하기에는 부족하다. 한국적 문화현실의 고려에서 나온 관객에게의 부담전가인 것이다.
ㄹ. 새엄마의 죽음? - 이또한 단정이 어려운 아니, 부족한 부분이다. 장화홍련의 미완성성에 일조한 부분이다. 영화속에서 새엄마가 죽었다고 보긴 어렵다. 마무리가 아쉽다.
결론적으로, 장화홍련은 논리적구성과 편집에 따른 설득력이 아쉽기는 했으나, 조폭과 코믹류의 영화로 일관해오던 한국의 영화현실에 한여름 더위속 소나기정도의 역할은 해주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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