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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바람이 분다
ldk209 2013-09-12 오후 3:13:24 852   [2]

 

아름답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

 

미야자키 하야오가 비행기라든가 나는 것에 대해 강한 로망이 있음은 굳이 그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작품만 대강 훑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기블리’라는 이탈리아 비행기 이름에서 ‘지브리’란 이름을 따왔겠는가. 그러니 멋진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열망 하나로 관동대지진, 2차 대전 등의 혹독한 시대를 통과해 살아남은 호리코시 지로라는 실존 인물의 삶에 매력을 느낀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그런데 실존 인물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에 <바람이 분다>는 매우 이질적이다. 일단 영화의 주요한 메시지가 담긴 부분은 대부분 지로의 꿈으로 표현되어 판타지한 느낌이고, 지로의 아픈 사랑 이야기는 우연의 남발과 아름답게만 채색되어 있어,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부분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단지 허구라서 내가 그런 느낌을 가졌다기보다 그저 사랑이라는 감정을 영화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좋다. <바람이 분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그랬듯이 여전히 표현과 묘사는 아름답고 훌륭하다. 이유는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멋진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끝내 이룬 한 인간의 삶, 그 자체에도 충분히 감동적인 부분이 있다. 그런데 <바람이 분다>는 정식 상영 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던 작품이고, 그 부분을 빼고 이 영화를 얘기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앙꼬 없는 찐빵’일 것이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전쟁을 미화했다’라거나 ‘일본 전범세력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등의 반응을 보고, 상당히 오버스런 해석이라고 생각했다. ‘파시스트가 되느니 차라리 돼지가 되겠다’(<붉은 돼지>)던 미야자키 하야오 아니던가 말이다. 그리고 현재에도 아베 정권의 보수성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날리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범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나는 이게 혹시 방사형 디자인만 보면 무조건 ‘욱일기’라며 공격하는 그런 심리에게 기인한 거 아닐까 지레짐작했다. 이런 식의 민감한 반응이 결국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우리가 현재 체험하는 중이다. 처음 ‘욱일기’는 상당히 민감한 이슈였으나 가면 갈수록 무뎌지고 있다. 모든 걸 정의하는 규정은 결국 하나도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저런 식의 비판 - 전범 세력에 대한 면죄부, 전쟁 미화 - 이 결코 허황된 얘기가 아니라, 상당히 근거 있는 합당한 비판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참혹한 전쟁에 대한 낭만적 시각, 패배한 일본(전범국)에 대한 감상적 접근,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일을 추구한 것 자체를 평가해줘야 한다는 세계관에 대해 과연 누가, 쉽게 동의할 수 있단 말인가. 특히 <바람이 분다>가 더 위험해 보이는 건, 이런 세계관을 담은 영화가 너무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심리적 기제에 대해선 나름 이해되는 측면이 존재한다. 아나키스트이자 환경, 생태주의에 입각한 그의 기본적 철학과 비행기에 대한 로망(영웅으로서의 지로)이 접합되기 위해, <바람이 분다>와 같이 애매모호한 스탠스가 자신으로서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성실하게 살았다는 게 모든 걸 덮는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 더군다나 지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떠한지, 그리고 자신의 일, 자신이 설계한 제로센이 왜 만들어지는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하는 사람이었다. 자기 주위엔 아무 관심 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얘기다.(그렇더라도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저 꿈을 이루기 위한 열정이 있었으므로 아름다웠다라고 얼버무리기보다 최소한 자신의 꿈이 현실에서 끔찍한 결과로 나타났다는 자각과 자책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사람>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케이트 윈슬렛이 분한 주인공은 글을 읽지 못하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누구보다 성실히 일을 한다. 하필 살아남기 위해 그녀가 해야 했던 일이 나찌였다는 게 문제지만. 결국 <더 리더>는 성실하게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님을, 결과물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 그보다는 올바르게 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바람이 분다>의 꿈 속 장면과 호텔에서 만난 독일인과의 대화 등을 통해 지로에게 면죄부를 안겨주기 위해 노력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금까지 작품에서 보여 왔던 일관된 반전, 반파시스트, 환경, 생태주의를 알기에 더 안타까운 지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 선언을 했다. 이전에도 두 차례 은퇴선언을 했다가 다시 복귀하긴 했지만, 나이를 감안할 때, 이번 은퇴 선언은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말 안타깝다. 하필 <바람이 분다>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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