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배급 전쟁, 밀리면 끝장!(상) 2011년 4대 투자‧배급사 집안 살림 어땠나
2012년 1월 9일 월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지난 12월 28일, 각 언론사 앞으로 메일 한 통이 배달됐다. ‘<퍼펙트 게임>은 전국 극장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기 희망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담고 있는 골자는 다음과 같다. 본인들의 영화가 <마이웨이> 배급사인 CJ E&M계열의 CGV체인에서 편파적인 상영관 배정을 받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퐁당퐁당(교차상영)’에 대한 일종의 호소문이었다. ‘퐁당퐁당’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새로울 건 없었다. 하지만 메일 발송인이 롯데엔터테인먼트(이하 ‘롯데’)가 배급하는 <퍼펙트 게임>의 제작사라는 점에서 여타의 ‘퐁당퐁당’과는 달랐다. 롯데시네마라는 든든한 극장체인의 지원을 받는 <퍼펙트 게임>이 멀티플렉스의 묵은 병폐인 ‘퐁당퐁당’에 대해서 비판의 날을 세운다? 쉽게 고개 끄덕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 주장 자체를 넌센스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리고 이것. 메이저 투자 배급사인 CJ와 롯데의 자존심 대결에서 비롯됐다는 의견도 상당했다.

CJ와 롯데의 자존심 대결은 지난 3월에도 있었다. CJ가 배급하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와 롯데의 <위험한 상견례>가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언론시사회 일정을 잡은 게 화근이었다. 보통, 배급 일정은 업체 간에 조율을 통해 결정된다. 다른 영화가 미리 잡아 놓은 시사회 날짜와 시간은 피해 주는 것. 그것이 이 바닥 상도다. 그 암묵적인 약속이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와 <위험한 상견례>에서 깨졌다. ‘누가 먼저 시사 일정을 통보했나’를 두고, 두 거대 기업이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CGV와 혈연관계인)<마이 블랙 미니드레스>가 적지인 롯데시네마에서 시사회를 하는 대신, 2시 시간대 시사 상영권을 가져갔다.(보통, 2시는 시사회의 프라임 타임으로 꼽힌다). <위험한 상견례>는 자사 극장에서의 시사 상영을 보장 받은 대신, 시간을 4시 30분으로 양보 했다. 이를 두고 양사의 영화관계자들은 ‘윈윈전략’이라 했다. 하지만 제 3자의 눈에는 대기업 중심의 수직 계열화가 낳은 해프닝이 아닐 수 없었다.

촌극이 CJ와 롯데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건, 아니다. 배급사간의 신경전은 한국영화의 양적 팽창과 궤를 같이 한다. ‘프리머스 시네마 극장 경영권’을 둘러싼 시네마 서비스와 CJ의 2004년 분쟁은 영화계 위기론까지 대두케 했다. 2006년 CJ와 쇼박스㈜미디어플렉스(이하 ‘쇼박스’)가 관객수 통계를 두고 입씨름을 벌인 것도 유명한 일화다. 당시 두 배급사는 서로에게 유리한 통계 기준을 내세우며, “우리가 1등!”임을 주장했다. 지난여름 개봉한 100억대 대작들의 침몰. 여기에도 배급사간의 신경전이 숨어있다. 비슷한 시기에 마운드에 오른 <고지전> <퀵> <7광구>는 연달아 헛스윙! 화려하게 입장해서 쓸쓸하게 퇴장했다. 작품 구질에도 원인은 있었지만, 개봉 시기도 문제였다. 대목시즌을 잡아야 한다는 배급사간의 치열한 경쟁이 공멸을 자초했다. ‘제 살 깎기’식 경쟁의 후유증은 상당했다.

투자배급사간의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게 분명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투자‧배급사가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을지 모르는 일. 아래, 4대 투자‧배급사들의 지난 한 해를 정리 해 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 각 배급사들의 지난 행보가, 앞날을 가름할 열쇠다.

◆CJ E&M, “배신이야! 배신!”
부동의 1위. CJ는 2011년도에도 어김없이 배급사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상처 깊은 영광이었다. 심혈을 기울인 <7광구>(224만)가 여름 폭풍에 난파됐다. <마이웨이>는 겨울 찬바람에 휘청거리는 중이다. <7광구> 총 제작비 117억 원. <마이웨이> 총 제작비 350억 원. 몸집이 커도 심하게 컸다. <써니>(736만명), <도가니>(466만명), <완득이>(530만명)의 분투가 <7광구> <마이웨이>의 실패에 빛을 바랬다. 송강호와 신세경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은 <푸른소금>(77만명)의 실패도 뼈아픈 추억으로 남는다. 그러고 보니, 2011년 CJ를 대표할 수 있는 키워드는 “배신이야! 배신!”이다.

이 와중에 CJ는 최고 흥행작의 영광도 롯데의 <최종병기 활>에게 빼앗겼다.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2008년), <해운대>(2009년), <아저씨>(2010년)에 이은 4연패 달성에 실패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CJ가 점유율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해외 배급 덕이 크다. <트랜스포머 3>(779만명)가 2011 최고 흥행을 쐈고, <쿵푸팬더 2>(506만명)가 기대에 부응했으며,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이 화려하게 비상했다. 그러니까 집안에서 진 빚의 상당부분을, 물 건너 온 영화들이 탕감해 줬다. 업계 최강 CJ가 마음 편히 웃을 수 없는 이유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젠 내가 넘버2!”
롯데가 투자‧배급에 뛰어든 건, 2005년.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롯데의 영향력은 미비했다. 그러다 2007년 <과속 스캔들> <7급 공무원>로 포텐셜이 터졌다. 자극을 받아, 더욱 열심히 달렸다.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쇼박스를 끌어내린 건, 2010년. 후발주자 롯데가 넘버 2로 진급하는 순간이었다. 롯데는 2011년에도 2위에 오르며, 넘버 2 자리를 공고히 다졌다.

지난해 롯데는 <최종병기 활>(747만명)을 빼고는 거론할 수 없다. 롯데에게 <최종병기 활>은 (오늘의 롯데 기업을 있게 한) ‘롯데껌’같은 존재랄까. 사실, <고지전> <퀵> <7광구>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던 영화였다. 롯데가 심혈을 기울였다지만, 반신반의 했다. 그런데 영화가 첫 공개된 날,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이, 영화 터진다!” 그리고 정말로, 터졌다. 이름 그대로 2011년 최종병기가 됐다. 토종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220만명)의 울림도 컸다. 220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애니메이션의 희망을 쐈다. 롯데로서는 흥행뿐 아니라, 체면도 사는 일이었다. 롯데에게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대를 걸었던 <평양성>의 실패는 차치하더라도, <체포왕>(87만명), <아이들...>(186만), <마마>(24만명) 등 허리에 해당하는 영화들의 성적은 아쉬움이었다. 연말 구원투수로 나선 <퍼펙트 게임>의 부진은 치명타다. <고지전> <퀵> <7광구>와의 시간차 개봉을 선택한 <최종병기 활>의 개봉 전략이 또 한 번 필요했을지 모른다.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 “무서운 아이들!”
떠오르는 신흥대국이다. 쇼박스 출신들이 설립한 중견 배급사 NEW의 출범은 2008년 9월. 배급에 손을 댄 건, 2009년 <킹콩을 들다>부터다. 그리고 이듬해 형님뻘 되는 쇼박스를 누르고 한국영화 관객점유율 3위에 올랐다. ‘청출어람’이라 할 만 했다. 2011년은 NEW에게 기념비적인 해다. 한국영화 점유율 3위를 지키는 동시에, 전체 배급순위에서도 3위로 뛰어올랐다.(2009, 2010년 NEW의 전체 배급사 점유율 순위는 6위였다.) 배급업을 시작한지 4년도 채 되지 않아 이룬 놀라운 성과다. CJ-롯데-쇼박스로 이루어져 있던 3강 구도가 NEW의 반격을 맞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중이다. 많은 이들이 꼽는 NEW의 장점은 내실 경영이다. NEW가 2011년 배급한 영화들을 잠시 살펴보자. <그대를 사랑합니다>(164만명), <블라인드>(236만명), <가문의 영광4: 가문의 수난>(236만명), <풍산개>(71만명). 몸집은 작지만, 효율은 좋은 작품들이다. 스타파워나 자본이 아닌 컨텐츠에 신경 쓴 결과, 흑자를 기록했다. NEW가 앞으로 어디까지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전략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쇼박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명실상부 업계 2위였다. 2010년 롯데에게 2위 자리는 빼앗겼다. 중소 배급사 NEW에게도 밀렸다. 자존심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2011년은 쇼박스에게 중요했다. 빼앗긴 들을 찾아야했으니까. 스타트는 나쁘지 않았다. 극장가 최대 성수기인 설 연휴에 내놓은 <조선명탐정 : 각시구투꽃의 비밀>(478만명)이 흥행 만개했다. 기사회생. 아마, 그 단어를 떠올렸을 거다. 하지만 이후 가뭄이 왔다. 극심한 가뭄이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인 <적과의 동침>이 달랑 24만명 관객 동원에 그치며 내부의 적이 됐다. 적과의 동침은 조심해야 한다는 걸, 다시금 증명했다. 추석에 내놓은 <챔프>(53만명)가 달리다 말았고, 황정민 파워를 앞세운 <모비딕>(43만명)도 기대에 못 미쳤다. 여름 시장을 노린 장훈 감독의 <고지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을 거다. 영화 시상식에서 많은 트로피를 거머쥐었지만, 수익에선 마이너스였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상’보다 인정받는 건, ‘돈’이다. 가뭄에 콩 난 격이라면, 239만명을 동원한 <의뢰인>의 선전이다. <조선명탐정 : 각시구투꽃의 비밀>와 함께 쇼박스에게 돈을 벌어다 준 유일한 효자였다.

쇼박스가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영화는 <도가니>. 쇼박스 내부에서 금지어가 아닐까 생각되는 영화다. CJ 배급을 타고 흥행에 성공한 <도가니>는 원래 쇼박스에게도 투자 문의가 들어갔던 작품이었다. 삼거리픽쳐스 엄용훈 대표는 CJ와 쇼박스에 투자를 제안했다. 양사의 기획컨텐츠개발팀과 투자팀은 각각 책상머리에 둘러 앉아 <도가니> 투자에 대한 찬반을 벌였(을 거)다. 쇼박스는 흥행리스크가 크다고 판단, 투자를 포기했다. CJ는 공유와 공지영의 힘을 믿고, 투자를 결정했다. 순간의 결정이 박스오피스뿐 아니라, 개인의 인생도 좌우했다. <도가니>의 흥행 이후, 쇼박스의 투자팀장과 마케팅팀장이 교체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지난 연말 쇼박스는 단 한편의 영화도 배급하지 않았다. 작전상 일보 후퇴라 보는 게 맞을 게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가 보다. “쇼박스가 어디에 팔린다더라”는 카더라 통신이 전해졌다. 사실, 쇼박스의 매각설은 오래전부터 지속돼 온 실체 없는 소문이다. 그러니, 소문이 신뢰할만한 건 못된다. 하지만 쇼박스의 자존심에 흠집이 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2년 CJ가 독주를 계속 이어나갈지. 정상등극이 목표라는 롯데의 소원이 이루어질지. 쇼박스가 왕년의 인기를 되찾을지. 그리고 무서운 아이들 NEW가 어디까지 성장할지. 2012년 이들의 꿈이 담긴 작품들은, ‘투자‧배급 전쟁, 밀리면 끝장!(하)’에서 소개한다.)

2012년 1월 9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총 4명 참여)
saida
관객입장에서 보면 그닥 달가운 내용은 아니군요. 왠지 배급사에 관객들이 놀아나는 상황인거 같아요. 그래도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의 흥행으로 배급사들도 정신 바짝 차렸겠어요. 돈만 쫓으면 거지꼴 난다~~   
2012-01-31 15:37
bumjjang
아 영화뒤에 또 이런 사정들이 있었군요.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2012-01-19 17:23
heyjj326
개인적으로 퍼펙트게임을 재미있게 본 관객으로써, 배급사 싸움에 밀려서 롯데배급인 퍼펙트게임이 CGV에서는 개봉하자마자 퐁당퐁당인것 보고 맘이 상했는데, 좋은 작품들이 배급사 싸움에 끼어서 피해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2012-01-19 16:55
ukkim47
관객은 뒷전인 배급전쟁이 싫어요~!   
2012-01-1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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