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상반기 총정리. 3D 꽃밭에서 웃어, 울어?
2010년 상반기 극장가 주머니는 어땠을까? 전년대비 14.6% 상승한 4,768억 원을 벌어들였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아니, 역대 최대치에 해당하는 수익이라니, 벌긴 잘 벌었다. 하지만 불어난 몸집에 비해 실속은 그리 좋지 못하다. 관객 수는 도리어 전년 상반기 대비 3.9% 감소한 6,944만 7,184명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관객은 줄었는데, 어떻게 매출은 증가했을까. 그 중심에 극장 요금 인상과 일반 상영관보다 관람료가 비싼 3D 입체영화가 있다. IMAX와 4D 플렉스의 활성화도 매출 증가에 한몫했다. 이러한 관람료 다변화에 힘입어 올 상반기 극장 평균 요금은 지난해 6,600원에서 7,880원으로 20%나 뛰었다. 10명의 관객이 들어야 벌 돈을 8명의 관객에게서 뽑아냈다는 소리다.
| 상반기 관객수 및 매출액(영진위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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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매출증가가 모두에게 웃음을 안겨줬을까? 그건 아니다. 요금 상승으로 인한 이득은 한국영화보다 3D 기술을 들고 나온 할리우드 영화들이 훨씬 많이 취했다. 이는 아래 표(상반기 TOP 30)에서도 나타나는데, 관객 수에서 외화를 앞선 한국 영화들이 매출액에서는 오히려 뒤지는 경향이 많았다. <하모니>와 <방자전>보다 적은 관객으로 7위와 8위에 오른 <타이탄> <드래곤 길들이기>가 매출로 따졌을 때는 각각 6위와 4위를 차지하는 게 그 예다. 눈여겨 볼 건, 같은 3D 입체영화인 <타이탄>과 <드래곤 길들이기>의 매출 순위도 역전됐다는 점이다. 이는 2D와 3D 관객 점유율에 따른 차이로, 관객의 75%가 3D로 관람한 <드래곤 길들이기>가 20%만이 3D로 관람한 <타이탄>을 밀어내고 더 많은 돈을 끌어 모았다. 상반기 흥행 순위 10위권 안에 오른 외화 중 <아이언맨 2>를 제외한 4편의 영화 <아바타> <타이탄> <드래곤 길들이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모두 3D 입체영화라는 점 역시 3D의 위력을 증명했다.
| 상반기 박스오피스 Top 30(영진위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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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할리우드의 3D 입체영화 열풍 속에서 한국영화는 상반기 내내 기를 못 폈다. 송강호, 강동원 주연의 <의형제>가 국내 영화로는 유일하게 500만 관객을 돌파(546만 명)했을 뿐, 이를 뒷받침할만한 영화들이 부족했다. 그나마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가 <아바타>에 맞서 361만 명을 불러 모았고, 여성 영화 <하모니>가 304만 명, 전도연의 컴백작 <하녀>가 228만 명을 모으며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실제로 흥행작 상위 10위권에 7편의 영화가 올랐던 작년에 비해 올해에는 <의형제> <전우치> <하모니> <방자전> <하녀> 등 5편만이 이름을 올렸다.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에서도 단 9주만 정상을 차지하며, 15주간 1위를 섭렵했던 작년에 못 미쳤다. 점유율 면에서도 2월과 6월에는 50%를 넘어섰지만, 나머지 달에는 30%대에 머물며 외화에 안방 자리를 내 줬다.
| 상반기 3D 영화 흥행 Top5(영진위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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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올 상반기에는 국가별 편식이 심했다. 한국영화가 43.1%, 외국영화가 56.9%를 기록한 가운데, 한국영화와 미국영화를 제외한 외국영화 점유율이 4.3%에 머물렀다. 상반기 TOP 30이 한국영화와 미국영화로만 도배된 점을 참조하면 이해는 쉽겠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2010년 상반기에는 총 41편이 찾아 온 유럽 영화가 1.9%로 3위를 차지했고, 작년 <적벽대전: 최후의 전쟁>과 같은 흥행 영화가 없었던 중국은 1.5%의 점유율에 그쳤다. 일본 영화의 경우 <제로 포커스> <우리 의사 선생님> 등 무려 31편이 상영 됐음에도 불구하고, 마니아 팬들에게만 지지를 얻으며 0.9%에 머물렀다. 일본 영화의 호시절은 끝난 것일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극장가의 다크호스로 평가받던 일본 영화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식어가는 분위기다.
배급사간의 경쟁에서는 전통의 강호 CJ엔터테인먼트(이하 ‘CJ’)가 경쟁사들을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CJ는 상반기 동안 총 27편을 배급, 전국 관객점유율 27.3%, 매출 점유율 27%를 기록했다. <전우치> <하모니> <방자전> <아이언맨 2> <드래곤 길들이기> 등 상반기 흥행 10위권에 오른 영화 절반이 CJ의 배급을 타고 극장에 나선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한편 <아바타>로 1분기(1~3월) 배급사 점유율 1위를 차지했던 해외 직배사 이십세기폭스코리아는 CJ에게 정상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최근 <나잇 & 데이>가 흥행에 성공하며 점유율 17.6%로 약진했다. 3D 입체영화 <아바타>를 배급 한 덕분에, 10%가량 차이나는 관객 점유율에 비해 매출 점유율에서는 7%정도로 1위와의 격차를 줄였다. 이어 <의형제> 등 5편을 배급한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가 8.6%의 점유율로 3위에 올랐고, 지난 상반기 <과속스캔들>에 힘입어 21.1%라는 놀라운 점유율을 기록했던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는 8.4%로 곤두박질쳤다. 최근 <포화속으로>로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이 역시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올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편 2010년을 기점으로 제작 중심에서 투자배급사로 재정비한 싸이더스FNH는 <하녀> <그린 존> 등으로 고군분투했고, <비밀애>로 눈물 흘린 시너지는 <베스트셀러>로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
스타가 흥행 보증수표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닌 듯하다. 이 공식은 상반기 극장가에서 여러 번 깨졌다. 이는 2010년 한국영화의 포문을 연 <용서는 없다>에서부터 시작됐다. <용서는 없다>는 설경구와 류승범이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110만 관객에 머물며 손익분기점을 달성하지 못했다. 특히 이 영화는 비평적으로도 호된 질타를 받으며 배우들의 명성에 흠집을 냈다. 천만 감독 이준익과 황정민, 차승원이 뭉쳐 기대를 모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도 이름값을 하지 못한 영화다. 전국 138만에 그치며 손익분기점 180만에 한 참 못 미쳤다. 이 밖에 이나영이 남장까지 불사했던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가 전국 17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고, ‘비담’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김남길이 출연한 <폭풍전야>가 5만 명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유지태와 윤진서가 <올드보이> 이후 7년 만에 만난 <비밀애> 역시 전국 16만 명에 그치며 쓴맛을 봤다. 해외 영화의 경우 스타 감독들의 성적이 지지부진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흥행의 제왕이 됐던 피터 잭슨이 들고 나온 <러블리 본즈>가 20만 관객에 겨우 턱걸이 했고, 명감독 클린트 이스트 우드가 연출한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역시 1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3D 열풍이 뜨거웠던 상반기 극장가의 흐름은 <라스트 에어벤더> <토이 스토리 3> <나니아 연대기: 새벽 출정호의 항해>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아바타(감독판)>가 대기 중인 하반기에도 계속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한국 영화들의 면면도 만만치 않아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이미 <이끼>가 하반기 스타트를 멋지게 치고 나간 가운데, 김지운 감독, 이병헌, 최민식 주연의 <악마를 보았다>가 대기 중이고, <추격자>의 나홍진, 하정우, 김윤석이 <황해>로 돌아온다. 원빈 주연의 <아저씨>도 기대되는 작품 중 하다. 하반기 극장가의 소리 없는 전쟁은 이미 막을 올렸다.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